극한의 생존 현장- ‘땅굴’의 내부를 가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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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 2008-05-28 ["300만 주검을 넘어 탈북한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 줌 햇살조차 들어오지 않는 흙구덩이 아래 지하였다!" 강제북송 피해 산간오지 지하로 숨어든 탈북자들의 처절한 현장 보고서] 지난 주, 본 기자에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인 자유청년연대 최용호 대표. 그는 몇 마디 형식적인 말을 하더니 대뜸 본 기자에게 귀가 번쩍 뜨일만한 한 마디를 했다. “수년간 중국 내에서 탈북자 망명지원활동을 펼쳐 온 유상준씨가 그동안 현지에서 찍어 온 탈북자 관련 사진을 공개하고 싶어 합니다” 무슨 사진들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아무튼 기자는 유 씨가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었다. 그 날 저녁, 기자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유 씨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모 처로 향했다. 최 대표도 지하철 OO역에서 만나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셨습니까, 선생님” 그 스스로가 탈북자인 유 씨는 기자를 그렇게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사실 간만의 만남임이 틀림없었건만 마치 엊그제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살가운 재회였다. 우리는 이런저런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의 거처로 향했다. 한 10분은 걸었을까. 드디어 도착한 유 씨의 자택에 들어서자 유 씨는 기자를 안방으로 안내하며 컴퓨터의 전원을 눌렀다. 작은 형광등이 켜진 안방은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이 평범했다.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하던 세월 동안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숨어 살았던 집입니다” 유 씨와는 그렇게 말하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언뜻 봐서는 풍경 사진같기도 하고 인물 사진 같기도 한 여러 수백 장의 사진들이 뜨고 있었다. 또 중국내에서 탈북자들이 숨어 사는 거처는 '피난처'를 비롯해 이미 세상에 알려진 곳이 여러 곳 있었으므로 기자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턱을 바싹 당겨 사진을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기자는 둔부를 망치로 여러 대 얻어 맞은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 곳이 정말로 짐승이 아닌 사람이 살았던 곳인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이 두번 세번 보았지만 햇살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그 곳은 분명히 미약하게나마 ‘집’의 형태를 갖춘 곳이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널리 공개되지 못했던 탈북자들의 구역, 탈북자들 중에서도 세상의 벼랑 끝에 내몰린 극소수의 탈북자들이 숨어들어 3년 여의 세월을 살았다는 그 곳. 일명 ‘땅굴’이라 불리는 탈북자들의 은신처 내부의 생생한 현장이 기자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의 주검들이 산천을 뒤덮고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북이 시작된 이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비밀에 싸여 있었던, 버림받은 탈북자들의 지하 은신처 ‘땅굴’의 내부 현장이 최초로 세상 밖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사실 ‘땅굴’의 외부는 이미 본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부는 그 누구도 근접해보지 못한 금기의 구역이었다. 마치 구석기 시대의 유적을 방불케 하는 땅굴의 내부에서 탈북자들이 사용했다는 취사도구, 환풍구 등이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현대 문명의 유산인 TV와 냉장고 등은 끝내 찾아볼 수 없었지만 기자는 그 곳에 숨어들어 중국 공안의 손아귀를 피해 굶주림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수년 간의 끊어질듯한 목숨을 이어야만 했던 탈북자들의 거친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느꼈던 강한 느낌은 곧 기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과 사명감으로 뒤바뀌었다. “선생님, 이제 이것을 세상에 공개하시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중국 정부의 ‘인간 사냥’을 피해 어떻게 살았고, 지금도 어떻게 살고 있고, 또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유 씨의 말투는 평소와 같이 순박하고 온순했지만 그의 눈에는 중국 대륙 수만km를 횡단했던 수 년에 걸친 기나긴 여정 동안 목격하며 숨기고 또 억눌러왔던 탈북자 인권 말살의 현장을 이제서야 드디어 이 무관심으로 가득찬 세상에 고발하게 되었다는 결연함과 후련함이 교차되고 있었다. 유 씨의 지도 아래 기자는 준비해 간 CD에 사진들을 옮겨담기 시작했고, 그 사진들을 갖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약 일주일에 걸쳐 작업과 기록을 진행한 결과 유 씨가 수년에 걸쳐 중국 내부를 경유하는 동안 목격하며 사진에 담아왔던 탈북자들의 처절한 생존의 지대, ‘지하 땅굴’의 내부가 이제 지상 위로 공개되려 한다. (기자 주 - 사진을 올리는 이 순간에도 흥분을 감출 수 없음을 고백한다. 워낙에 방대한 양의 사진 자료들이 있어 지역별로 나누어 보도한다. 유 씨가 제공한 사진들은 탈북자들이 살았던 땅굴의 내부 현장 이외에도 중국 내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탈북자들의 참혹한 현장을 렌즈에 담은 사진들도 여럿 있었다. 아울러 현재 본 방송에 연재되고 있는 유상준 씨의 수기 ‘나는 브로커였다’에서도 땅굴의 존재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바 수기를 읽은 후 사진을 본다면 땅굴에 대해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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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을 보고 남파 북한공작원이 사용한 땅굴을 소개하는줄 알았는데 ...
저런 곳에서 어떻게 겨울을 보냈을까?
도저히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상상이 안된다.
북한정부는 언제쯤 민족의 이 비극을 종말 지을지 ?
아직도 교회에 미련잇는지요?
세상 선하고 안전한곳이 교회인것처럼 말하지만
세상 제일 악한사람들이 모인곳또한 교회이고
세상 믿지못할곳 또한교회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있다고생각하십니까?
잇다소생각하시는분들 막지는않습니다
쟈유니깐요 그러나 교회가 아닌 자기자신만이 신을믿으세요 인간을 믿지말구여
교인들도 인간입니다 사악한 마음을 가질수잇는 인간
신이 잇다며 ㄴ 만일 하나님이 잇다면 ...
눈에 보이는것도 지금은 믿을수없는시기
눈에 안보이는걸 너무믿지마세요 우리탈북인들이 수없이
당해본일이 아닌가여? 짐승도 한번빠진 웅덩이에는 다시안빠질려구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인간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것을 믿지않으면 그만이지 왜 남이 믿는것까지 비난하면서 그러세요?
제일 악한 사람들이 모인곳이 교회라고 하면 교회사람들 당신보고 돈달라 했어요?밥달라 했어요?옷달라 했어요?.
사람 사는곳 어디나 같애요. 말로만 하나님믿는다고 하면서 못된짓하는사람들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을 믿는 우리 전체를 대표할수있다고 보세요?
당신도 좋은점이 있고 나쁜점도 있어요.
전 그 험한 몽골국경을 넘을때 브로크도 안내자도 없이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나로 떠났고 성공했어요.
그래요.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언제나 저희들을 살펴주고계십니다.
전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드리면서 살아가고있기에 탈북자들이 그렇게 정착하기 힘들다는 이 대한민국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가고있어요.
당신을 만날수가 있다면 그들에게 소개하여 주고 싶습니다. 나도 탈북자이고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 보았고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엇지만 이곳에서 살아가신 분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니 그들을 욕되게 하지 마시기 바람니다.
서리가오는데 애기엄마들이 다섯면이나 모여서 애들때문에 행군도 정지되고 당분간 숨어살려고 양방목하며 지다다니는 한족들에게 라이타와 옥수수를 얻어먹으며 살았고 그나마 애기들이 감가걸려 밤중에 마울로 약얻으러내려왔다가 말을몰라 손시늉하며 약을 구걸하는것을보고 누군가 공안에 고발하여 잡혔죠,,
그러나 산에 애기들이 있어서 다시 올라가야한다고하니 공안들이 얼마나 조선사람이 무서운지 그야밤중에 엄마들과애들뿐인 곳으로 경찰병력3트럭이나 끌고 사냥개서너마리끌고 우리를 앞세워 올라왔어요,,
우린거침없이 오솔길로 올라오는데 경찰들은 쇠바가지모자까지쓰고 곤봉들고 총들고 잠복자세로 올라오더군요,
애기들이추워서 콜록콕록기침하고 배고파우는데 그것을 보구서 혹시 옆에 남자들이 숨어있을까봐 샅샅이 뒤지더니 없으니 하는말이 모두 체포한데요,,
우리가 살려달라고애원해도 할수없는일,,
이 공안애새끼들이 비닐박막을 찢고 밟고 허물고 애기들 귀저기가방을 뒤쳐서 버리고 애기들을 품에안고 벌벌 떠는 엄마들을 마구 끌어다 차에 실더군요,
그리고 그자리를 모조리 사진찍느라고 야단입데다.
근데 바로 그너머 옆산동굴에 북한남자들이 몇명 살았어요,,
그남자들은 아마 무사했을겁니다.
장백현 탑산에도 위의사진같은 집들이 많아요.
북한남자들이 하도 숨을데는없고 내려가면 잡아북송시키고 해서 땅굴에서 살더라구요,,
산골짜기로 물뜨러 내려오면 숨어사는 사람들이 물을 길러 내려와 만나군해도 무서워서 서로 말도못하고 피했더랬어요.
현제도 한족들 빈무덤자리나 무덤가옆에가보면 양지쪽으로 몰래몰래 자리를 찿아 다니는 북한사람들이 많아요,,
당분간 있으면서 먼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도하지요..
참으로 나라없는백성 개만도 못하다고하더니 정일이새끼때문에 수천만의 우리사람들 얼마나 고생합니까?..
평생 꽃제비로 살순 없지요,,
복수로 이를갈며 독제정권망할날만 기다릴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