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북한 사람보다 행복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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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9-04-13 16:27 소나타를 몰고 가는 한국의 한 평범한 사람과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북한의 평범한 사람 중에 더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 나는 둘의 행복지수를 측정해 보면 북한 사람이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나타를 몰고 가는 사람은 길이 밀려 짜증나지, 게다가 옆에선 벤츠니 아우디니 하는 외제차가, 또는 체어맨이니 에쿠스니 하는 고급 국산차가 번쩍번쩍 지나가기까지 하면 자신에게 차가 있다고 별로 행복한 생각이 들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과 비교하면서 사는데 이 소나타를 몰고 가는 사람은 외제차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 그가 차도 없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난 그래도 소나타라도 있으니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할까. 아닐 거라고 본다. (※소나타를 사례로 든 것은 한국의 국민차가 소나타라고 해서 든 것일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은 어떨까. 이 사람은 차를 타고 다니는 간부들과 비교하면서 한탄하기 보다는 먼지 날리는 길에서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그래도 난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우월감을 느낄 확률이 높다. 왜냐면, 한국에선 내가 열심히 하면 좋은 차를 탈 수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한 회사에서만 열심히 하면 간부가 되고, 임원이 되고 하는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하더라도 장사가 잘되면 좋은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꿈꿀 수 있다. 그런데 평등이라는 구호로 포장된 북한 사회주의에서는 이런 꿈조차 꾸기 힘들다. 자전거 탄 사람은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승용차를 탄 간부와 자기 자신을 거의 비교하지 못한다. 북한에서 한개 군에 국가가 내준 차를 타는 사람은 단 5명 정도이다. 군당 책임비서, 당 조직비서, 인민위원장, 보위부장, 안전부장 정도이다. 북한 인구 2000여만 명에 군 또는 구역이 200여개니 한개 군의 평균 인구가 10만 명 정도인 셈이다. 그중에서 국가에서 승용차를 허용 받은 사람은 단 5명 좌우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종자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 종자란 다름 아닌 출신성분이다. 노동자가 또는 농민이 위의 5명 간부 중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꾸진 않는다. 북한은 평등사회라고 하지만 사실은 봉건 신분사회와 다를 바 없다. 하다못해 김일성대에 입학하려고 해도 6촌 이내에 출신성분이 걸리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 증조할아버지가 벼슬을 했다든지, 해방됐을 때 조상이 부농이었다든지, 또는 전쟁 때 한국을 도왔다든지, 또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든지 등등 무수한 성분조회의 굴레에서 살아남아야 그나마 김일성대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 아버지가 빨치산을 했다고 하던지, 또는 간부라든지 등 좋은 성분이라면 나도 간부가 되지만 농민은 대를 이어 농민을 할 확률이 90%가 넘는다. 한국도 재벌의 자식이 재벌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돈 많은 사장이 되는 길이 근본적으로 봉쇄되진 않았다. 이런 점에서 더 평등한 사회는 북한보다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과 북한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행복이나 불행이란 감정은 대체로 내 처지를 높은 곳과 비교하는지 아니면 낮은 곳과 비교하는 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은 대체로 사람들이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달린다. 올라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비슷한 악명 높은 신분의 굴레가 유지되기 때문에 대체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산다. 인도의 행복지수가 한국보다 높다는 보도를 봤던 것 같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조차 우리가 전혀 행복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그런 작고도 소박한 행복을 느끼면서 산다. 그러니 남한 사람들이 “우리는 국민소득이 높으니 당연히 북한보다 행복할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태평양 섬나라들이나, 방글라데시 등(심지어 나이지리아가 세계 3위에 꼽힌 적도 있다)이 한국보다 잘 사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 보건대 그들이 불행한 것 같아도 그건 우리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이렇게 썼다고 해서 북한이 한국보다 더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에 대해선 어떤 통계나 조사도 할 수 없다. 원론적으로 볼 때 그런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행복하다는 나라들을 보면 대체로 비교할 수 있는 외부 사실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북한 사람의 상대적 행복감이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나는 북한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남한을 알고 세계를 본 나는 북한에서 절대로 예전과 같은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없다. 내가 탈북 과정에 체포돼 중국과 북한에서 감옥과 강제노동수용소 등 모두 합해서 7개를 옮겨다니며 많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 북한에 돌아간다면 그때 감옥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일 것이다. 왜냐면 나는 이미 바깥을 다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은 물질적인 조건으로 볼때 북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다만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하고 살 따름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더 불행감을 느끼고 살 수도 있다. 그 불행함의 원죄는 다름아닌 모든 것을 '알아버렸고 알 수 있다'는데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천국의 에덴 동산에서도 슬픔에 잠겼듯이…. "나는 왜 울타리를 넘어와 선악과를 따먹었을까. 잘한 일일까, 하지 말았어야 했을 일일까. 아, 인간이란, 삶이란 과연 무엇이더냐~"하고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 잠깐. 여기서 그만!!! 그래봤자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행히 나는 안다. 멈출줄만 알아도 사람은 덜 불행해진다. 다시 원론에 돌아가자. 지금까지 길게 쓰긴 했지만 결론은 남한에서 승용차 운전하는 사람보다 북한에서 자전거를 몰고 가는 사람이 대체적으로 더 행복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승용차 보유대수를 따져보면 매 가정에 거의 차가 1대씩 있지만 북한에선 자전거가 매 가정에 있진 않다. 농촌에 가보면 두 집 건너 자전거 1대씩 있어도 정말 잘 사는 마을이다. 그러니 자전거가 한국의 차보다 훨씬 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전거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이 이제야 본론에 슬슬 들어가는 느낌이다... 북한의 자전거는 한국의 차보다 귀할 뿐 아니라 활용도도 차가 가정의 필수품이 돼버린 한국보다 오히려 더 높을 수 있다. 자 이제부터 아래의 사진들을 보자... 첫 번째 사진 이 여성들... 자전거에 큰 마대를 7개나 싣고 간다. 무게를 봐선 곡물류는 아니고, 숯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정확치 않다. 이들에게는 자전거가 이동수단을 넘어 생계의 필수적인 수단이다. 어깨에 메야 할 삶의 무게를 자전거와 나누어 졌으니 나름대로 이 사진 속 할머니보단 훨씬 나은 셈이다. 저 짐들 속에는 몇 명의 생계가 담겨 있을까.타지 못하면 끌고라도 간다. 이들은 무엇을 싣고 올까...갈 때는 이동수단으로 돌아오는 길엔 운반수단으로 변하는 자전거...타이어가 저 무게를 견디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그래도 가을에 추수한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저렇게 한 짐씩 싣고 돌아오는 저들의 발걸음은 가벼울 것이다. 가장의 무게를 체험해 본 분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런 힘든 순간이면 기다리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힘을 얻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가장의 그 마음을... 북한에선 자전거의 짐 판에 그 사람의 능력도 실려 있다. 똑같이 농촌지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걸음처럼 보이지만 누구에게는 마대가 3개이고 누구에게는 마대가 1개뿐이다. 자전거에는 마대만 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못 싣는 것이 없다. 사람은 당연하고 각종 생물도 자리를 차지한다. 이 돼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기분을 물어볼 여유도 없이 기절한 듯한 자세다. 자전거는 본의 아니게 움직이는 광고판이기도 하다. 한 도시에서 대한민국이 지원한 쌀 마대를 싣고 타고 가는 남성들...남한에선 돈을 주고 일부러 버스나 택시에 각종 광고판을 붙이고 홍보하지만, 저것은 돈도 안 드는 자연스러운 대한민국 브랜드 광고판이다. 다 쓰고 보니 뭔가 사진들이 이상하다. 모두 포장도로다. 아마도 외국인이 접근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그나마 포장도로가 깔린 괜찮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북한에서 포장도로가 깔린 곳은 많지 않다. 비포장도로가 훨씬 많다. 그러니 타이어가 견디질 못한다. 튜브(북한서는 내피라고 한다)는 보통 너무 땜질을 해서 누더기가 된 상태로 탄다. 글을 마치면서 한마디만 더…. 많은 탈북자들은 북에서도 자전거가 없었고 남쪽에 와서도 남들 집에 다 있는 자가용 승용차가 없다. 그러니 이들은 북에서든 남에서든 상대적 행복감과는 거리가 멀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부디 이런 불쌍한 사람들에게 인터넷에서 탈북자 관련 뉴스가 나오면 “빈손으로 와서 우리가 낸 세금을 뜯어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악플을 달지 말자... 행복을 모르고 살아온 그네들의 가슴을 한 번 더 긁어놓으면 그대가 남보다 더 행복해지는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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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런 훌륭한 글들을 써주셔서 감사히 잘보고있습니다.
어떻게 글로써 이렇게까지 표현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공감하는 내용들이고 하고싶은 말들을 해주셨네요.
이 글을 읽으면서 서울에서 살아가는 탈북자인 저는 자전거를 탄 저사람보다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다만, 경제적으로 더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이 상대적인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외부를 몰라서'라고 생각하는 기자의 판단에는 이의가 있습니다.
즉, 모두 못 살고, 정보력이 부족해서 다른 풍요로운 삶을 모르니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것은 철저히 가진 자로서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라 봅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들 저개발국가 국민의 경제적 수준은 그게 그겁니다. 한마디로 다 못 살죠. 그러니 되려 평등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 눈에도 그럴까요? 결코 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 눈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닭 한마리 더 있는 것, 하다 못해 남의 집 숟가락 하나 더 있는 것조차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원래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태생적으로 '욕심'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고, 그 욕심이라는 것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어떤 이의 경제적 수준이 높던 낮든 간에, 채워질 수 없는 욕심에 갈증을 느끼고 타인과의 사소한 비교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매커니즘은 동일합니다.
결국,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경제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개개인의 맘 속에 있는 '탐욕'이라는 녀석과 관련된 것입니다.
탐욕이 크면 클수록 그 갈증은 커질 수 밖에 없고, 탐욕의 크기가 작다면 나름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행복지수도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습니다.
기자가 언급한 행복지수가 높은 저소득국가를 가만이 보면, 그들 사이에는 '못사는 나라'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종교적 가치관이 삶에 배여 있거나 하는 이유로해서)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납득하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생활양식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행복해지려면, 내 자신의 맘을 잘 다스려야만 합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결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왜 님은 남들이 다가지는 똥차하나 못가지나요
그것이 님이 탈북자때문일가요 아니면 그동안 일하지않고 놀아서일가요
님은 북에 돈을 보내서 못샀다는데 그게 되는 얘긴가요
일년에 한달백만원씩 벌면 천이백인데 소비빼고 나머지를 다북한에 보넀는가요 그리고 님이 말하는 똥차는 50만원짜리도 있어요
차없는게 남이탓이라 하지말고 저자의 글을 이상하게 분석하지 말기를 바랄께요 그리고 저자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개인적으로 행복지수는 객관적인것이라고 믿습니다. 즉 지옥에 앉아있더라더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행복한겁니다. 전 그래서 북한 형제들이 한국에 오지 않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했습니다.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대접 받으며 잘살고 있는데 여기와봐야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나 면하면 장땡인데 그렇다고 행복할가요? 본인들이 지금 그나마 북한에서 다른사람에 비하여 잘살고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굳이 여기오라고 할 이유가 없는거죠.
북한에서 행복해야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여기서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위에 원효대사인지 하는 사람 좀 이상하네요.
깃발을 보니 한국은 아닌것 같은데....
그렇게 부정적이니 한국에서 안살고 영국에서 살고 있겠지.
또다른 생각님이야 말로 행복지수가 진짜로 높은 분입니다.
Photos make me impress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