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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탈북소녀 "남녘땅 첫 한가위 가슴 설레요"
조선일보 2009-10-01 03:30: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4297 2009-10-02 02:06:25


생모는 中공안에 잡혀 北送… 태국 거쳐 1만㎞ 대장정
지난 4월 한국 땅 밟아… 수원 최영한씨 부부가 입양
엄마·아빠 불러보라고 하자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5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최영한(46)씨네 집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이 뽀얗고 눈빛이 똘똘한 이 집 막내딸 연아(가명·12)가 책가방을 던지며 "엄마~" 하고 최씨 품에 폭 안겼다. 연아는 엄마 품에 코를 파묻고 "엄마, 나 새 필통 사줘" 했다. 최씨가 "필통 3개나 있잖아? 안돼" 하자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엄마아~" 했다.

연아 엄마 최씨는 "이번 추석은 우리 가족이 연아랑 맞는 첫 명절"이라고 했다. 연아는 지난 8월 26일 처음으로 최씨 집에 왔다. 그전에는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 있었다. 연아는 탈북자다. 함경북도에 살다가 2년 전 겨울 생모와 둘이서 꽁꽁 언 두만강을 밟고 국경을 넘었다. 모녀가 중국에서 도망다녔다. 생모는 도중에 공안에 붙들려 북송됐다. 그 뒤론 소식을 모른다.

연아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라오스를 거쳐 태국 국경을 넘었다. 총 든 군인과 경찰만 보면 심장이 새처럼 파드닥거렸다. 1만㎞가 넘는 대장정 끝에 연아는 방콕의 이민국 감호소에 들어갔다가 지난 4월 한국에 왔다.

연아처럼 부모 없이 한국에 온 미성년 탈북자를 '무연고 청소년'이라고 한다. 매달 1~2명, 많게는 7~8명씩 한국에 온다. 현재 국내에 총 9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원에서 사회 적응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막막해진다. 이들이 국내 가정으로 입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친척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연아는 그마저 없었다. 연아는 통일부에서 연결해주는 지방의 청소년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때 조육환(46·회사원)·최영한씨 부부가 "연아를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연아 아버지 조씨는 "10여년 전부터 아내와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입양을 생각해왔다"며 "지인을 통해 연아 사정을 듣고 아내와 상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있는 아들(21)과 고3인 딸(18)도 적극 찬성했다.

지난 8월 20일 하나원에서 부부와 연아가 처음으로 만났다. 연아는 말도 없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최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줌마 아저씨하고 함께 살래?"

연아는 북한 말투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최씨는 "아무래도 힘들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명함과 공중전화카드를 건넸다. 연아가 명함과 카드를 손에 꼭 쥐더니 가슴에 댔다.

다음 날 최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연아였다. 별말도 없었다. 하나원 공중전화 부스에 선 채 "아줌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연아는 전화를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연아가 불쑥 최씨에게 물었다. "며칠 몇 시에 데리러 오실래요?" 하나원 퇴소식(8월 26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연아를 데려온 첫날 최씨는 연아에게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지 말고 엄마, 아빠라고 해보자"고 했다. 연아는 새침하게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자기 방에 들어간 연아가 고개만 쏙 내밀고 "아빠", "엄마" 했다.

연아가 집에 가져온 옷은 팬티 3장, 양말 2켤레, 여름옷 2벌뿐. 다음 날 최씨 부부는 옷을 사러 연아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연아가 부부의 손을 한쪽씩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연아는 나중에 최씨에게 "하나원 있을 때 엄마 아빠하고 손 잡고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고 했다.

연아는 탈북했던 얘기를 거의 안 한다. 최씨는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을 안 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밤에 잘 때 자주 움찔움찔 놀라고 '싫어, 안돼!' 같은 잠꼬대를 한다"고 했다.

연아는 어두운 것도, 혼자 자는 것도 싫어한다. 밤마다 최씨 품에 파고든다. 최씨의 팔을 끌어다 팔베개를 하고 최씨의 가슴을 만지면서 잔다. 최씨는 "헤어진 엄마가 많이 그리운 모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연아는 최씨에게 생모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최씨는 "하나원에 있을 때 다른 탈북자들이 '다시는 친아빠, 친엄마 못 만날 거다' '앞으로 한국 양부모가 너를 키워줄 테니 잘 따르라'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우리를 '엄마' '아빠'로 빨리 받아들이는 건 좋은데, 그만큼 상처받은 게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친엄마에 대해서는 당분간 묻지 않을 겁니다. 상처가 되겠죠."

최씨 부부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으로 올렸을 뿐 아직 법적으로 연아를 입양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조씨는 "입양될 경우 국가에서 주는 복지 혜택이 상당 부분 사라지게 돼 당분간 입양을 미뤘다"고 했다. 최씨는 "그래도 내 딸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연아가 시집가서 손자를 낳아도 내가 길러주겠다"고 했다.

올 추석은 연아가 한국에 와서 맞는 첫 추석이다. 지난달 6일 충남 보령에 있는 큰집에 가서 친척들과 함께 벌초도 하고 성묘도 했다. 연아는 큰어머니와 함께 딴 밤을 한 봉지 들고 와 "엄마, 내가 가시에 손가락 찔려 가면서 딴 거야"라며 최씨에게 내밀었다.

조씨는 "추석 앞두고 통일전망대에 가 보려고 했는데 연아가 어떤 곳인지 알더니 가기를 꺼려서 올해는 관뒀다"며 "아들이 휴가 나오면 맨 먼저 가족사진을 새로 찍으려 한다"고 했다.

추석빔으로 고운 한복을 입은 연아가 최씨의 목에 팔을 감고 "저녁 때 양꼬치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연아는 햄버거·피자·떡볶이보다 양꼬치를 더 좋아한다. 양꼬치는 생모와 생이별한 10살짜리가 이국(異國)의 시장통에서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오물오물 씹어먹던 음식이다.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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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2009-10-02 02:29:05
    그래 얼마나 탈북자 안고 척 하나 보자.
    미국도 탈북자 받아주고 대대적 선전하지만
    어떻하던 밀입국자들 쫕아내려고 야단이다.
    1명 탈북자 받아주고 만명 밀입국자 쫕아낸다. 참 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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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 2009-10-02 08:54:38
    참 멋진 모습입니다.
    이런 멋진 분들이 계시기때문에 희망이 생기네요.
    연아야 새엄마아빠랑 함께 지난 아픔들 다 잊고 행복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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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워 2009-10-02 10:55:20
    천사가 따로 없네요. 연아를 입양한 부모님들은 정말 천사입니다. 부모없는 아이를 친딸처럼 돌보아 주시는 정말 감사합니다.꼭 연아 가 앞으로 커서 잊지 않으것입니다.그리고 연아야 고운것도 네게서. 미운것도 다 네게서 난다는 것을 명심하고 앓치말고 무럭무럭 잘 자라 훌륭한 인재가 되거라. 연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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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샌드맨 2009-10-02 11:05:10
    참 좋으신 분들입니다.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닮고 싶은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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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님 2009-10-02 12:04:28
    최영한선생님// 고맙습니다.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렸으면 좋을지...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과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한국 입국 후 보고 듣던 중 제일 마음이 푸근해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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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행복 2009-10-02 15:06:15
    이 글 읽으면서 눈가를 적시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어린 연아를 잘 키워주십시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일 그리운것이 사랑이고 정이에요.
    온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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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 2009-10-02 22:13:24
    너무 행복한 사연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탈북자로서 정말 고마운 연아의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온 가족이 행복하고 복 많이 받고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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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천재 2009-10-03 00:45:54
    맨 위에 개범이같은 삐딱선 탄 빨갱이 같은 놈들만 없으면 참 좋을텐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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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 2009-10-03 01:48:18
    생모는 中공안에 잡혀 北送 .... 아... 이런일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맘이 너무 아파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니 아이 잘키우실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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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2009-10-03 08:56:37
    연아의 부모로 되고자 하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저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네요.^_^
    연아도 부모님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이쁘게 크기를 바래요.
    온 가족에게 신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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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anks 2009-10-03 13:43:46
    오늘 이기사를 보면서 이분들을 더욱 존경하게됩니다
    한국에 이런 고마운분들이있기에 사회가아름다운것이아니겠습니까
    이런분들에게는 항상 축복이 가들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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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rmaos 2009-10-04 11:08:14
    눈물없이 볼수없는 사연입니다, 친자식처럼 생각하시고 품어 주는그사랑에 정말 감동되였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저도 수원에 살고있습니다. 연아와같은 처지인 사람이기에 더욱더 감동되였습니다. 삼자이지만 연아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최영한씨 부부에게 진정으로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림니다. 연아야! 고맙은 분들의 크나큰 사랑과 은덕을 한시도 잊지말고 바라는대로 고이 자라서 대한민국과 조국통일을 위해헌신하여주길 바란다, 이길이 북에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하루빨리 만나는 길입을 명심하길 바란다. 항상 아빠 엄마에게 충성하길 바란다. 앓지말고 건강해라. 연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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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 2009-10-05 09:24:40
    눈물이 납니다. 입양해준 양부모도 고맙고 엄마아빠라고 잘 따라주는 애기도 그렇고... 부디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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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애 2009-10-05 10:58:28
    부족한것이 많은 탈북민들로 일부 남한국민들의 냉대와 찬 시선의 틀을 깨치며 떠오른 아름다운 기사에 한 탈북민으로 목이메였으며, 천사와 같은 최영한씨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연아야 새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는 것만이 보답의 길이다. 새 부모님께 효녀가 될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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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fox 2009-10-05 11:56:21
    눈물없이볼수없는 글이엿습니다
    입양하여길러주시는 부모님께 진심의감사드립니다
    늘행복한가정에행운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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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움 2009-10-05 17:45:44
    감사합니다...이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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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양생각 2009-10-06 21:53:00
    아마 첫 댓글다신 분은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중 신분이 불안한분 같아요
    우리도 입양을 많이 생각 하고 있는데.북쪽에서 내려온 무연고 아이들이 많군요 그건 전혀 생각 못햇어요, 입양 한다면 한국에서 입양을 할거란 막연한 생각뿐이 였는데,,,
    꼭 행복 한 나날이 되기 기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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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hd 2009-10-07 22:14:42
    기니스 기록집에 나올만한 , 정말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

    드라마틱한 , 한페지를 보면서 감정이 이상해짐을 , 토로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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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hd 2009-10-07 22:19:17
    저런사실을 영화로 만들어서 북한 으로 들여보낸다면 북한사람들은 대한민국 만세부를 껏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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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s 2009-10-10 15:06:39
    연아의 행복을 꼭 지켜주세요.아지고 북한에는 몇만명의연아가
    배를 곪고 엄마를 찾으며 죽어가고 있어요.
    북송된 연아엄마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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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쌴티 2009-10-11 19:44:01
    최영한씨. 소위북한말로 당신은 숨은영웅입니다. 꼭 당신이 기대하는 참된딸로 키워주리라고 믿습니다.연아야.< 낳은정보다길러준정이 더크다.>속담같이꼭훌륭한따님으로자라 은혜갚을줄아는게 인간의사명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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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님 2009-10-12 10:39:46
    연아를 키워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주님안에서 늘 행복한 나날만 보내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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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의아픔 2009-10-16 10:52:29

    - 이별의아픔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0-16 10: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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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둥이 2009-10-17 07:47:31
    연아야...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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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애 2009-10-17 11:50:59
    연아 아빠 엄마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연아를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너무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가 커 아직은 마음을 다 여는것 같지 않지만 엄마 아빠라고 벌써 스스럼 없이 부르는 것을 보면 속은 어른인것 같네요. 저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되지만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그만큼 연아의 아빠 엄마를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연아를 잘 키워주세요. 가정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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