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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5 613 2005-12-12 19:19:05
북한이요 중공이요 한국인라고 새우쌈을 하고있을때 정부는
탈북자를 버린다는 사실 알고 게셔요?
북한 국제 인권회의를 반대하는 정부 친북세력이 큰소리치며 다니는 이때
게시판에서 새우싸움 참 재밋네요 한국인 이라는분 서해교전 희생용사들이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나라 테러로 잠입했던 남파간첩이 통일 애국열사로 묘비까지 세워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세요 중국조선족 비난하시는분 탈북자가 중국에 가지않으면 비극이 없어 진다고
생각하세요? 태국에서 종신형을 살고있는 북한 탈북여인 알고게셔요?
님들이 그리도 한을품은 나라가 조선족 사회라면 김정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에서도 탈북자 받으면 북한정부가 항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탈북하지 말고
북에서 노예처럼 살란 말이예요? 인터넷에서 이런글을 북의 보위부가 보면 참말로
님들이 올린글 누그편에서 쓴것인지 판단이 어렵네요?
탈북자 동지회 게시판은 서로가 헐뜻는 게시판이 아닌 화합과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장이 되였으면 하는 바램 임니다 동지회 전화번호도 있는데 정 이해가 안되면
그쪽으로 전화 하시는것이 마음이 훨씬 편할 것인데
왜 스트레스를 풀지못하고 사시는 지요 ?
또 한해가 지나가니 쓸쓸히 넘기는 이해 지난일들 추억에 묻어버리고
술 친구 친목회나 만드는 것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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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똥 2005-12-12 19:32:07
    왜 반대햇는지 단세포적으로 생각말고 좀 깊이 생각해보시길..북의 인권거론했다가 저쪽에서 생트집잡고 이산교류도 식량도 뭐고 안받겟다 교류도 안하겟다 하면 어차피 저쪽 당신의 이웃 많은 인민들만 고통스럽지않을까?
    무슨 대남적대훈련이니 모임이니 하면서 집회다 궐기다 하면서 긴장감 높여서 북의 인민들에게 또 무슨 고난의 행군이니 뭐니 하면서 인민들 고통스럽게 하면 좋겟나? 당신이야 여기서 따뜻한 밥먹고 있고 김정일 미우니 별소리 다하겟지만 우리 정부는 북의 인민들에게 돌아갈 고통이 너무커서 하고싶어도 못하는것이고 다른나라넘들이야 지들과 관계없으니 인권이니 어쩌니 그러겟지.그런 북의 인권이왜 진작나오지않고 이제서야 떠들까? 북의 인권떠들어서 북이 당신은 들을것같은가? 잘알텐데.. 오히려 북의 인민들만 고통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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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2005-12-12 19:57:30
    홍길똥님 북한교류 남은결과 북핵 문제뿐임을 명심하세요
    용천 폭파 세계가 지원할때 북한에서 나온말
    라면은 안 먹으니 돈으로 달라 ,,
    아무리 북에 퍼주어도 굶주리는 것은 백성이고
    북한정치는 김정일이 위대하니 세계가 지원준다고 선전
    그래도 굶어죽는 사람은 북한의 인민들임을 알고 게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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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건평 2005-12-12 20:55:42
    홍길똥님 왜 반대했는가를 빨갱이 논리 및 놈현 빠돌이 논리로 옹호할 생각 말고 왜 동족이 동족의 인권과 생명에 침묵하고 기권하는 이런 짐승만도 못한 행위를 했는가 부터 반성하면 됩니다.
    이산가족 교류나 식량 안받아줄까봐 무서워서 인권에 대해 말도 못꺼낸다? 이게 말이나 되는지. 그따위 빨갱이 논리로는 결국 김정일 군자금만 계속 퍼줘야 하고 북한 인권이나 국군 포로 송환은 요구하면 안됩니다. 북한인권 거론하면 북한 인민들이 더 고통스럽다? 실제가 그렇다면 탈북자들이 왜 북한인권가지고 시위까지 하는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멍청한 빨갱이 논리나 현정권 빠돌이 노릇하다보면 해괴한 논리가 생겨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옆집 애들이 술꾼 아비에게 쳐맞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당연히 신고를 하던 때리지 말라고 하던 나서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옆집 술꾼을 자극하면 안되니까 조용히 해야한다는건 개소리인 것이고 옆집 술꾼 자극하면 결국 애들이 더 고통스럽다는건 옆집 술꾼이나 내뱉을 주정에 불과합니다. 억지 쓸게 따로 있습니다. 정치꾼들이나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생명의 존귀함부터 생각하면 됩니다. 자신의 부모가 납북되었다면 북한 자극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납북된 부모 송환요구 하지 않는 놈 누가 있을런지... 탈북자분들의 의견을 가지고 좌익 빨갱이 논리로 설득시키려는 행동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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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똥 2005-12-12 23:10:38
    그논리라면 박통때나 전통 태우통 영샘통때 대북정책은 무엇어엇습니까?
    북을 압박햇던 결과가 좋은 결과로 나왔습니까? 박통땐 왜 북의 인권을 한마디도 거론하지않았나요? 납북자문제도 사실공론화된게 대중통과 무현통시절아닙니까? 과거 영샘통이 북에 쌀주고 인공기 게양당하고 북에 원자력발전소 지어준다고 미국이 시키는데로 30억달러나 비용들어서 짓다가 미국이 그만두라니 그만두고... 식량과 지원은 김정일좋은일시키고 북의 인민들에게 하나도 돌아가지않는다는 논리라면 당신들 북의인민들은 생각도없군요.
    김정일과 그들하수인들에게 우리의 지원물자가 가고 식량이 간다하여도 그들은 마음속으로 알겁니다. 자기들이 남조선으로부터 빌어먹고있고 무언가 잘못되있다는것을.. 서서히 변하고 있고 이미 북의 인민들은 남조선에서 보낸 쌀을 먹고있는것을 알고잇어요. 미국도 쌀주고 일본도 쌀주고 유럽도 쌀주는데 그들은 김정일이 이뻐서 줍니까?우리도 마찬가지지만 ..
    김정일이 어쩔수없는 사실상 그곳의 통치자이고 협상을 해야할 당사자이기에 어쩔수없는것 아닙니까? 빨갱이 빨갱이 지겹군요.박통때도 이후락이 북에가서 불가침조약체결하려고 했고 전통 노통 모두 북에 비밀리에 많이도 방문했더군요. 지들이 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사람이 하면 빨갱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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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요한돈강 2005-12-13 13:27:39
    홍길똥<= 당신은 괘변으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지마시요. 당신은 역대 대통령 다 씹어제끼고 개대중이와 놈현이를 옹호하고 싶겠지?
    그러면 지난 역대 대통령때나 개대중이,놈현이 때와 뭐가 달라졌는가 눈이 있으면 봐라.
    퍼주고 그들을 살찌운것 밖에 무엇이 있는가? 그렇게 도와주는대도 어째서 북한 주민들은 못먹고 배고파서 계속해서 탈출하는가 말이다!!!
    결국은 우리가 퍼주는것은 일반주민의 주린배를 채우는 곳으로는 전혀 가지 않고 위정자와 군인들의 몪으로 다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신은 안주면 김정일이가 쳐들어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를 협박하지 마라!!!
    김정일 그놈은 쌀한톨 안줘도 쳐들어 내려올 똥배짱도 조오또 없는 머저리다.오히려 퍼 줌으로 해서 그놈의 거지근성만 키워 놓고 버르장머리만 더럽게 만들었음을 개대중이는 알아야 한다.
    적어도 개대중이는 퍼줌으로써 노벨상은 쳐 받았는지 모르지만 북한 인민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음을 머지 않아 알게 될것이다!!!
    퍼줄때 퍼주더라도 철저히 기브앤드 테이크 원칙을 고수 할 줄도 모르는 한마디로 개대중이는 노벨상에
    눈이먼 늙은 머저리다!!!
    그것은 머지 않은 장래에 증명 되리니 지켜보시길...

    그리고 또 한가지
    당신이 박통을 욕하는데 개대중이가 북한에 퍼줘서 노벨상 받았지만 박정희가 이루어 놓지 않았으면
    뭘로 퍼 줬을지도 한번 생각해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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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똥 2005-12-13 20:41:26
    당신 북에 수십억달러 줘보시요 노벨상 주는가...북에 달러줘서 노벨상받았다는 당신의 소리가 궤변이요.박통이 뭘이루었다는지도대체.. 정경유착에 온갖 비리에 .가수대리고 노래부르다가 총맞고 사망하고 조금이라도 비난하면 잡아죽이고 김정일과 뭐가 다른가? 당신이 이렇게 컴자판이라도 두드린것도 김대중통의 벤쳐육성덕아닌가? 대중통이전에 인터넷이라는소리들어나 보았는가? 대체 박통이 뭘했다는것인지원... 한번 과거로 가서 박통에게 왜 민주화좀 신경쓰지 그랬냐고 한번 말이라도 해보시지 .. 남산에서 죽도록 터지고 맞고 그래도 박통박통할려는지 모르겟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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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2005-12-13 21:56:55
    개대중이가 국민의 돈을 몰래 빼돌려 스위스 계좌로 마피아 처럼 돈세탁까지 해서 김정일에게 바쳤다는게 미리 알려졌다면 절대로 노베루상은 절대로 못받았을 겁니다. 도덕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기 때문이죠. 그 와중에서도 170억원을 김대중의 개인 박지원이가 띵겨먹다가 걸려서 구속까지 되었습니다. 국민의 돈을 가지고 이런 개만도 못한 놈들이 장난을 쳤던 것이죠.
    참고로 박정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조국 근대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죠.

    -------------------------------------------
    한국전력 발족(1961. 7. 1, 1982. 1. 1 한국전력공사로 개칭)
    섬진강 수력발전소 재 기공(1961. 8. 19, 준공 : 1965. 12. 20)
    수출조합법 공포(1961. 9. 9)
    춘천 수력발전소 기공(1961. 9. 21, 준공 : 1965. 2. 10)
    공업표준화법 제정(1961. 9. 30)
    전원개발 5개년 계획 발표(1961. 11. 24)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발표(1962. 1. 13)
    울산을 중화학공업 우수 자연적 입지조건으로 결정 공포(1962. 1. 27)
    기술진흥 5개년 계획 발표(1962. 2. 2)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식(1962. 2. 3)
    의암댐 착공(1962. 3. 1, 준공 : 1967. 8. 1)
    수출진흥법 등 16개 법령 공포(1962. 3. 17)
    남강 다목적댐 착공(1962.4, 준공 : 1970. 7)
    대한무역진흥공사 발족(1962. 6)
    남양송신소 준공(1962. 9. 10, 기공 : 1960. 12. 31)
    선암댐 착공(1962. 9, 준공 : 1964. 12)
    사연댐 착공(1962. 9, 준공 : 1965. 12)
    해운센터 착공(1962. 10. 10)
    새나라자동차 생산개시(1962. 11, 1963. 5월까지 조립 생산함)
    광주 내연 준공(1962. 11. 15)
    제2비료(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1962. 12. 28, 현 L/G화학 나주공장)
    희야댐 착공(1962년, 준공 : 1964년)
    보리와 밀 품종개발에 성공(1963. 1. 25)
    울산정유공장 착공(1963. 3. 12, 준공 : 1964. 5. 7)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공포(1963. 4. 17)
    직업재활원 개원(1963. 9. 25)
    서독 광부 1진 123명 취업(1963. 12. 21)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준공(1964. 4, 기공 : 1962. 9. 7)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6. 20, 기공 : 62. 11. 20)
    현대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7)
    부산 감천 화력발전소 준공(1964. 8. 20, 기공 : 1961. 2, 132천㎾)
    식량증산 7개년(1965~71) 계획 발표(1964. 8)
    한국수출산업공단 설립(1964. 8, 서울디지털, 부평, 주안, 남동, 북평국가산업단지 관리)
    공업품 표준 규격 제정과 KS 표시 허가제 실시(1964. 8)
    제3비료(영남화학) 울산공장 기공(1964. 11. 29, 준공 : 1967. 3. 14, 현, 동부한농화학)
    1억불 달성 제1회 수출의 날 제정(1964. 11. 30, 기념식 : 1964. 12. 5)
    서울 구로지역 수출산업공업단지(1~6공단) 착공(1965. 3. 12, 준공 : 1974. 11. 5)
    경제 각의, 잠업증산 5개년 계획 의결(1965. 3. 18)
    제4비료(진해화학)공장 기공(1965. 5. 2, 준공 : 1967. 1. 7)
    영월 화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5. 9. 1, 기공 : 1962. 5)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1965. 11. 3)
    군산화력발전소 기공(1965. 12. 1, 준공 : 1968. 10. 31)
    국내 텔렉스 400회선 개통(1965. 12. 16)
    비인공업단지 조성(1966. 4. 29)
    팔당댐 기공(1966. 6. 8, 준공 : 1973. 12. 31)
    제2차 경제개발 5개년(1967~1971) 계획 발표(1966. 7. 29)
    울릉도 추산수력발전소 준공(1966. 8. 1, 착공 : 1964. 4. 4)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준공(1966. 12. 13)
    광주공업단지 착공(1966. 12. 16)
    아시아개발은행 가입(1966. 12. 17)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여수 제2정유공장 기공(1967. 2. 20, 준공 : 1969. 6. 3)
    전주 제1공업단지 기공(1967. 3. 22)
    대구 3공업단지 기공(1967. 3. 31)
    속초 수산센터 준공(1967. 4. 14)
    소양강 다목적댐 기공(1967. 4. 15, 담수 : 1972. 11. 25, 준공 : 1973. 10. 15)
    제5비료(한국비료) 울산공장 준공(1967. 4. 20, 현 삼성정밀화학)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준공(1967. 4. 24)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1967. 4, 준공 : 1970. 12. 28)
    GATT 가입(1967. 4. 15)
    부산 연합철강 준공(1967. 9. 29)
    의암수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7. 11)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 발표(1968. 1. 5)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기공식(1968. 3. 22, 준공 : 1972. 10. 31)
    대암댐 기공(1968. 6, 준공 : 1969. 12)
    화천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6)
    축산개발 4개년 계획 확정(1968. 7. 26)
    안계댐 기공(1968. 8, 준공 : 1971. 12)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1968. 9. 9~10. 20)
    청평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9, 기공 : 1966. 9)
    쌍용시멘트 동해공장 준공(1968. 10. 31)
    한국투자개발공사 발족(1968. 12. 16)
    한국수출품포장센터 발족(1969. 2. 8)
    자동차공업육성 기본계획 발표(1969. 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발표(1969. 4. 2)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기공(1969. 5. 15, 준공 : 1970. 6. 22, 제2위성통신지구국 준공 : 1977. 8. 25)
    부산화력발전소 3,4호기 준공(1969. 6. 4, 기공 : 1967. 7)
    알루미늄제련공장 울산공업단지에 준공(1969. 7. 3)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 결정(1969. 9. 3, 착공 : 1970. 5, 준공 : 1973년 초)
    경기도 안성군 한독낙농목장 준공(1969. 10. 11)
    부평단지 준공(1969. 10. 31)
    관악산 기상레이더 설치(1969. 11. 29)
    철강공업육성법 공포(1970. 1. 1)
    수출정보센터 개관(1970. 2. 7)
    포항종합제철공업 단지 기공식(1970. 4. 1, 제1기 설비종합 준공 : 1973. 7. 3)
    마산 수출자유지역 관리청 개청(1970. 4. 3)
    인천화력발전소 제1호기 준공(1970. 5. 29)
    관세청 개청(1970. 8. 21)
    수출 10억달러 달성(1970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1. 2. 9)
    당인리 화력발전소 준공(1971. 4. 10, 착공 : 1966. 8. 3, 현 서울화력발전소)
    안동다목적댐 기공(1971. 4, 준공 : 1976. 10)
    중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1. 5, 구미국가산업단지 관리)
    내수용 생산업체에서도 수출을 의무화할 것을 지시(1971. 10. 25)
    서울-부산간 장거리 자동 전화 개통(1971. 3. 31)
    제3차 인력개발 5개년 계획 확정(1972. 1. 27)
    녹색혁명추진(1972. 2. 9, 통일벼 개발)
    기업사채 동결 등 긴급 명령 발표(1972. 8. 3)
    중화학공업정책 육성 선언(1973. 1. 12)
    공업진흥청 신설(1973. 1. 12)
    현대울산조선소 기공(1973. 3. 25, 제1호선 진수 : 1974. 2. 15)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온산, 창원, 여수~광양, 군산~비인, 구미 등 5개 대단위공업단지 조성 계획(1973. 3. 26)
    춘천, 대전, 원주, 청주, 전주, 이리, 광주, 목포 등을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중화학공업(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건설계획 확정(1973. 5. 24)
    서울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격표시제 실시(1973. 6. 1)
    기능공 양성정책 수립(1973. 7. 10)
    주안단지(5공업단지) 준공(1973. 7. 15)
    정수직업훈련원 개원(1973. 7. 18, 현 서울정수기능대학)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구미전자공업 1단지 조성 완료(1973. 10. 5)
    옥포조선소 기공(1973. 10. 1, 준공 : 1981. 10. 17)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충주 제6비료공장 준공(1973. 10. 26)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창원, 온산, 옥포, 죽도, 안정, 여천 지정 (1974. 3. 27, 창원 : 종합기계공업기지, 온산 : 석유정제·비철금속 공업기지, 옥포·죽도·안정 : 조선공업기지, 여천 : 종합화학공업기지)
    동남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4. 4, 창원, 울산, 온산, 안정국가 산업단지 관리)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1974. 4)
    죽도조선소 기공(1974. 4, 준공 : 1980. 12. 5)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한 박 대통령 특별지시 발표(1974. 5. 29)
    주안단지(6공업단지) 준공(1974. 11. 5)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1976년)
    대청다목적댐 기공(1975. 3. 27, 준공 : 1981. 6. 30)
    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 기공(1975. 11. 10, 준공 : 1980. 1. 29)
    통일벼보다 질이 좋고 다수확품종인 밀양21호와 23호를 개발하여 77년부터 통일벼를 없애고 신품종으로 대체할 방침을 수립(1975. 11. 20)
    청평 양수댐 기공(1975년, 준공 : 1980. 12. 18)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제 실시(1976. 1. 19)
    한국기술검정공단법안 마련(1976. 5. 18, 기술인력관리, 자격, 검정의 일원화)
    포항제철 제2기 확장공사 준공(1976. 5. 31)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6. 6. 18)
    국산자동차 포니 첫 수출(1976. 6)
    반월 신도시 건설 발표(1976. 10. 2, 기공 : 1977. 3. 30)
    특별소비세법 제정(1976. 12. 22)
    초고압송변전시설 준공(1977. 4. 30)
    월성 원자력 1호기 기공(1977. 5. 15, 준공 : 1982. 3. 10)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부가가치세 시행(1977. 7. 1)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우승(1977. 7. 10)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서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7. 11, 반월, 시화, 아산, 석문국가 산업단지 및 천안 외국인전용단지 관리)
    연초댐 기공(1977. 11, 준공 : 1979. 12)
    수출 100억 달러 기념식(1977. 12. 22)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1977년)
    종합행정정보망 구성키 위해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마련(1978. 2. 20)
    전 국토의 토양정밀조사 완료(1978. 2. 23)
    고리 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4, 기공 : 1971년)
    충주 다목적댐 기공(1978. 6. 3, 준공 : 1986. 10)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막(1978. 8. 30, 부산)
    주요 도시간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개통(1978. 12. 31)
    쌀 4천만 섬 수확(1977년)
    인천화력발전소 3, 4호기 준공(1979. 4, 착공 : 75. 5)
    고리원자력 3, 4호기 기공(1979. 4. 9)
    원자력발전소 9, 10호기 울진에 건설키로 확정(1979. 6. 12)
    온산 동제련소 준공(1979. 12. 11)
    공산댐 기공(1979년, 준공 : 1981년)
    삼량진 양수댐 기공(1979년, 준공 : 1985년)
    수출국 1961년 25개국에서 163개국으로 확대(1979년)








    국토건설단 창단식(1962. 2. 10)
    동해북부선 개통(2차 공사 : 옥계 → 경포대 착공 : 1962. 4. 26, 개통 : 1962. 10. 31)
    동진강지역종합개발공사 착공(1963. 3. 15, 준공 : 1972. 12. 31, 김제 부안)
    황지선 개통(1963. 5. 30, 황지지선 착공 : 1961. 8. 10, 개통 : 1962. 11. 30 황지본선 착공 : 1961. 8. 12, 개통 : 1963. 5. 30)
    능의선(서울교외선) 개통(1963. 8. 20, 1차 능곡 → 가릉 착공 : 1959. 10. 14, 개통 : 1961. 7. 10, 2차 가릉 → 의정부 착공 : 1963. 4. 27, 개통 : 1963. 8. 20)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준공(1965. 1. 25, 착공 : 1962. 6. 20, 신교 착공 : 1979. 1. 4 / 준공 : 1982. 2. 2)
    전남지구 6천여 정보 간척공사 기공(1965. 5. 18)
    수자원종합개발 10개년 계획 수립(1965. 6. 30)
    경인복선 개통(1965. 9. 18, 주안~영등포)
    진삼선 개통(1965. 12. 7, 사천~삼천포, 착공 : 1964. 4. 29)
    고한선 개통(1966. 1. 19, 증산 → 고한, 고한 → 황지 개통 : 1973. 10. 16)
    인천항(제2도크) 착공(1966. 6. 1, 준공 : 1974. 5. 10)
    경북선 개통(1966. 10. 10, 점촌→영주)
    한남대교 착공(1966. 1. 19, 준공 : 1969. 12. 25)
    정선선 개통(1967. 1. 20)
    대도시 그린벨트설정 공포(1967. 2. 10, 서울, 부산 등)
    충남 예당 전천후개발사업 15년만에 준공(1967. 4. 28)
    한강변 제1로 개통(1967. 9. 23, 제1한강교 → 영등포 입구)
    한국수자원개발공사 발족(1967. 11. 23)
    정선선 개통(1968년, 착공 : 1962. 5. 10)
    경인고속도로 개통(1968. 12. 21 가좌I/C까지 23.4㎞, 전선 29.5㎞ 개통 : 69. 7. 21)
    경수고속도로 개통(1968. 12. 21 신갈 I/C까지 31.3㎞, 착공 : 1968. 2. 1)
    경전선 개통(1968. 2. 7)
    한강변 2로 개통(1968. 6. 27)
    경부고속도로 전 노선 확정(1968. 9. 12)
    포항항 건설(68~73)
    한국도로공사 발족(1969. 2. 15)
    지하수개발공사 발족(1969. 2. 15)
    3·1 고가도로 개통(1969. 3)
    언양-울산 고속도로 착공(1969. 6. 20, 개통 : 1969. 12. 28)
    전남 고흥 간척사업 완공(1969. 7. 15)
    서울 신도시건설 착수(1969. 7. 29, 한강이남 여의도)
    중앙, 태백, 영동선 등 산업선 전철화 기공(1969. 9. 12, 청량리~북평 320.8㎞ 준공 : 1975. 12)
    호남 야산개발단지 준공(1969. 10. 6)
    천안~대전 고속도로 개통(1969. 12. 10)
    제3한강대교 개통(1969. 12. 26, 현 한남대교)
    대구~부산 고속도로 개통(1969. 12. 29, 착공 : 1968. 9. 11)
    문경지선 개통(1969. 6. 10, 문경~진남)
    호남고속도로 착공(1970. 4. 15, 개통 : 1973. 11. 14)
    서울대교 개통(1970. 5. 16, 착공 : 1968. 2, 현 마포대교)
    경부고속도로 준공식(1970. 7. 7, 서울~부산 428㎞, 기공 : 1968. 2. 1)
    남산 1호 터널 개통(1970. 8. 15, 착공 : 1969년)
    수도권 지하철 전철사업 발표(1970. 10. 22)
    남산 2호 터널 개통(1970. 12. 4, 착공 : 1969년)
    4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유역 종합개발 계획(1970. 12. 17)
    강변4로 개통(1970. 12. 24)
    제주도 일주도로 준공(1971. 1. 31)
    영동고속도로 착공(1971. 3. 13, 개통 : 1975. 10. 13)
    거제대교 건설(1971. 4. 8)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공(1971. 4. 12, 개통 : 1974. 8. 15)
    국토종합개발계획 확정(1971. 9. 7)
    통일로(서울~문산) 개통(1971. 12. 18)
    남해고속도로 착공(1972. 1. 10, 개통 : 1973. 11. 14)
    전국을 10대 관광권으로 하는 관광개발 5개년 계획 확정(1972. 1. 20)
    수도권 상수도 취수구 팔당으로 이전 결정(1972. 5. 26)
    전국 702개 도서를 72년부터 76년까지 개발키로 확정(1972. 6. 26)
    부산, 인천, 묵호, 군산 등 4개항을 집중 개발하겠다고 언명(1972. 11. 24)
    지리산, 설악산, 낙동강 하류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1972. 12. 11)
    제주도 일원에 그린벨트 설정(1973. 3. 8)
    중앙선전철 개통(1973. 6. 20, 청량리~제천)
    남해대교 개통(1973. 6. 22)
    태백선 개통(1973. 10, 제천~태백)
    동해고속도로 착공(1974. 3. 26, 개통 : 1975. 10. 14)
    영동선 전철 개통(1975. 12. 5)
    영동·동해안 종합개발계획 확정(1976. 3. 24)
    천호대로·천호대교 개통(1976. 7. 5)
    잠수교 개통(1976. 7. 15)
    구마고속도로 준공(1977. 12. 17, 기공 : 1976. 6. 24)
    성산대교 기공(1977, 준공 : 1980. 6. 30)
    호남선 복선 준공(1978. 3. 30, 대전~이리)
    남해지선 신설 및 남해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 착공(1978. 5. 22, 개통 : 1981. 9)
    낙동강유역 종합개발사업 기공(1978. 7. 2)
    지하철 2호선 강북구간 착공(1979. 3. 17)
    한국토지개발공사 발족(1979. 3. 27)
    성수대교 개통(1979. 10. 16)








    공군작전사령부(K-55) 창설(1961. 7. 1)
    공군작전사 발족(1961. 9. 15)
    해양경찰대 발족(1962. 5. 1)
    공군 항공창 준공(1962. 5. 29)
    제1이동외과병원(130명)과 태권도 교관단(10명) 파월 환송식(1964. 8. 24)
    국무회의, 비전투요원 2,000명 파월 의결(1965. 1. 8)
    주월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 결단(1965. 2. 5, 파월 : 1965. 2. 19)
    방공포병대대(호크유도탄부대) 창설(1965. 3. 19)
    초음속 F-5 제트 전투기 도입(1965. 4. 3)
    주월한국군사령부 창설(1965. 9. 25, 서울 필동)
    맹호부대/청룡부대/십자성부대 파월(1965. 10)
    육군 1개 사단과 해병 1개 여단 창설 발표하고 국군 62만명으로 증강하겠다고 언명(1966. 5. 19)
    한국군 장비현대화에 대하여 공동성명(1966. 6. 22)
    백마부대 파월(1966. 9. 16)
    해병 제5여단 창단(1966. 11. 23, 포항)
    동해안 2개 지역 공군기지 건설(1967. 2. 26)
    최대의 공군 광주기지 준공(1967. 5. 25)
    치안국에 대간첩 사령부 설치(1967. 6. 21)
    국방부 종합청사 신축(1967. 6. 23)
    전투경찰대 발족(1967. 8. 26)
    대간첩작전본부 발족(1968. 1. 22)
    육군 기동타격대 창설(1968. 1. 27)
    향토예비군 창설식(1968. 4. 1, 대전)
    공군레이다방공망 준공(1968. 6. 13)
    방위산업정비 전투태세완비 3개년 계획 확정(1968. 7. 5)
    유엔군으로부터 작전권 대폭 이양 받았다고 발표(1968. 7. 8)
    제3훈련비행단 창설(1968. 7. 23)
    7개 시의 고교, 대학생에 군사훈련 실시 결정(1969. 1. 9)
    제3사관학교 개교(1969. 3. 18)
    공군 F-4 팬텀기전투비행부대 창설(1969. 9. 23)
    청소년에 1일 승공교육 실시키로 결정(1970. 1. 15)
    국방과학연구소 설립(1970. 8. 6)
    한국군 현대화와 주한 미군 감축에 합의(1971. 2. 6)
    155마일 전선방위 국군이 전담키로 했다고 발표(1971. 2. 7)
    병기공장(M-16 소총) 건설에 관한 한미간 계약 체결(1971. 3. 31, 착공 : 1971. 4, 준공 : 1972)
    한미합동 제1군단 창설(1971. 7. 3)
    박격포 고사포 등 중화기의 국내생산계획 추진 발표(1971. 11. 14)
    전국에서 첫 민방공훈련 실시(1971. 12. 10)
    국산병기 시제품(카빈소총, 기관총, 60밀리 박격포, 3.5인치 로켓발사기) 전시(1971. 12. 16)
    국방과학연구소 60·81밀리 박격포 개발 착수(1972. 4. 30)
    경인지구 예비군 고사포부대 배치 완료(1972. 6. 30)
    4.2인치 박격포 및 105밀리 곡사포 개발 착수(1972. 8. 1)
    국방과학연구소 지뢰탐지기 개발 착수(1973. 7. 10
    M16 소총 양산 체제로 전환(1974. 2. 1)
    국방과학연구소 106밀리 대전차포탄 개발(1974. 2. 10)
    M48전차를 M48A5 전차로 개조사업 착수(1974. 6. 20)
    국방과학연구소 105밀리 곡사포 연막탄 개발(1975. 4. 2)
    전투상비군부대 창설(1975. 6. 30)
    국방과학연구소 155밀리 곡사포탄 개발(1975. 7. 2)
    방위세법 공포(1975. 7. 16)
    민방위기본법 제정(1975. 7. 25, 민방위대 발대식 : 1975. 9. 22)
    함대함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1975. 11. 7)
    국방과학연구소 전신·전화단말기 KAN/TCC-29 개발 착수(1976. 1. 15)
    국군현대화 5개년 계획 77년에 완료된다고 발표(1976. 1. 21)
    한국군수산업진흥회 발족(1976. 3. 5, 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M48A1 전차를 M48A5, M48A3 전차로 개조하는 사업 착수(1976. 5. 20, 생산 : 1978. 4. 6, 자유진영에서 9번째로 전차생산국)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형 기관단총 개발 착수(1976. 10. 2)
    대전 기계창 준공(1976. 12. 2)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음을 천명(1977. 1. 28)
    미군 철수에 대해 선 보완 후 철군 강조(1977. 5. 25)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형 소총 XB-7형 개발 착수(1977. 6. 1)
    첫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 개최(1977. 6. 17)
    북한의 200해리 경제수역 및 해상 군사경계선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명(1977. 8. 1)
    국방과학연구소 8인치 곡사포 고폭탄 개발(1977. 8. 30)
    군수산업 육성(1978. 1. 18, 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산업과 특수전차개발에 착수)
    국산장거리 지대지유도탄, 중거리유도탄, 다연발로케트 시험 발사에 성공(1978. 9. 26, 세계 7번째)
    한미연합사령부 발족(1978. 11. 7)
    국방과학연구소 대형 함정용 전자장비(KDJ-25) 개발 착수(1979. 1. 30)







    원자력연구소 원자로에 첫 점화(1962. 3. 19)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1962. 11. 18)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수립(1966. 2. 1)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발족(1966. 2. 4)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재단법인 설립(1966. 2. 10)
    미국 바텔기념연구소와 기술교류협정 체결(1966. 6. 10)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기공(1966. 10. 6, 준공 : 1969. 10. 23)
    과학기술처 신설(1967. 4. 12, 개청 : 4. 21)
    제1회 과학의 날(1968. 4. 21)
    KAIST 발족(1971. 2. 7)
    대덕연구단지 착공(1973. 6. 23)
    선박연구소 및 해양연구소 설립(1973. 10. 30)
    한국표준연구원 설립(1975. 12. 24, 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자원개발연구소 설립(1976. 5)
    한국화학연구소 설립(1976. 9, 현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핵연료개발공단 설립(1976. 12. 1)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설립(1976. 12. 26,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 설립(1976. 12. 29, 현 한국전기연구원)
    한국기계금속연구소 설립(1976. 12. 30, 현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통신기술연구소 설립(1976. 12)
    한국과학재단 발족(1977. 5. 18)
    한국열관리시험연구소 설립(1977. 8, 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해양개발연구소 설립(1978. 4)
    고려인삼연구소 설립(1978. 5)
    한국연초연구소 설립(1978. 5)
    태양에너지연구소 발족(1978. 6. 5)
    한국선박연구소 설립(1978. 11)







    문교부 외국으로 문화재관리국 설치(1961. 10. 2)
    문화재보호법 제정 공포(1962. 1. 10)
    남대문 중수 공사 준공(1963. 5. 14)
    동대문 개축 준공(1963. 9. 5)
    문화재보수 5개년 계획 수립(1963. 9. 10)
    팔의사 창의탑 준공(1963. 11. 5)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고 신축 및 보수(1963~1977)
    경주 석굴암 복원공사 준공(1964. 7. 1, 보고서 작성 : 1961. 7. 17)
    무형문화재, 기능 및 예능보유자 인정 전승사업 시작(1964년)
    석가탑 사리함에서 세계 최고 목판 인쇄 다라니경문 발견(1966. 10. 14)
    국립중앙박물관 착공(1966. 11. 16, 준공 : 1972. 8. 25)
    밀양 영남루 보수(1966. 11. 30)
    서울 문묘 보수(1966. 11. 30)
    부여 정림사지 정비(1966. 12. 6)
    법주사 대웅전 보수(1966. 12. 18)
    종합민족문화센터 기공(1967. 4. 25)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1967. 4. 26)
    국립묘지정화사업 현충탑 건립(1967. 10. 1)
    세종로에 이충무공 동상 제막식(1968. 4. 27)
    소수서원 해체 복원(1968. 12. 2)
    광화문 복원공사 준공식(1968. 12. 11)
    현충사 성역화 중건 준공(1969. 4. 28, 착공 : 1966년, 조경공사 : 1972~1974년)
    범어사 대웅전 보수(1969. 8. 19)
    월정사 대웅전 준공식(1969. 10. 14)
    유관순 유적지 착공(1969. 10, 준공 : 1973. 3)
    금산사 대적광릉 해체 복원(1970. 2. 29)
    행주산성 보수 준공(1970. 11. 10, 착공 : 1969년, 행주대첩비 건립 : 1963년)
    세종대왕기념관 기공(1970. 11. 19, 준공 : 1973. 10)
    도산서원 보수 준공(1970. 12. 8, 착공 : 1969. 10. 6)
    화엄사 대웅전 보수(1970. 12. 25)
    남원 광한루 보수(1970. 12. 31)
    진주성 보수 준공(1970년, 착공 : 1969년)
    남한산성 보수정비사업 착공(1970년)
    금산 칠백의총 정화사업 준공(1차 : 1971. 4. 13, 2차 : 1976. 9. 20)
    무령왕릉 발굴(1971. 7. 8)
    속리산 법주사 사천왕문 복원(1971. 8. 30)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 신관 개관(1971. 9. 1, 기공 : 1965. 9. 14)
    경주고도개발 10개년 계획 확정(1972. 3. 10)
    육산리 고분군 정화(1972. 11. 4)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발굴 착수(1973. 4. 6)
    불국사 복원 준공(1973. 7. 5, 착공 : 1970. 11. 3)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개원식(1973. 10. 17, 현판식 : 1974. 10. 11)
    문예중흥 5개년 계획 발표(1973. 10. 19)
    해미 읍성 복원정비(1973~1977)
    낙성대 준공(1974. 6. 10, 착공 : 1973. 11)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1974. 12. 10)
    문경 관문 해체 복원(1974년, 제1관문 성벽 보수 준공 : 1975년, 제2관문 문루복원 및 성곽보수 준공 : 1975년, 제4관문 홍예성곽보수 준공 : 1976년, 제3관문 문루복원 및 제1관문 단청 준공 : 1977년)
    황남대총(98호 고분) 발굴(1974~1975년)
    서울 성곽 복원?보수계획(1975~1978년)
    중앙민속박물관 개관(1975. 4. 11)
    수원 성곽 복원 착공(1975. 5. 30)
    경주박물관 개관(1975. 7. 2)
    광희문 복원공사 준공(1975년)
    경주 용담정 천도교 유적지 정비(1975년)
    옥산서원 보수작업(1976. 1. 20)
    한국 미술 5천년전(1976. 2. 23~7. 25, 일본 도쿄, 교토, 나라)
    밀양 표충사 정화사업(1976. 4. 10)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준공(1976. 5. 7, 착공 : 1975. 10)
    유적지 및 전적지개발 위한 특별법 제정(1976. 6. 24)
    한산도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1976. 10. 20, 착공 : 1975. 1)
    신안 해저문화재 발굴(1976년부터)
    예산 추사고택 보수정비 준공(1977. 6. 27, 기공 : 1976. 7. 4)
    경주 통일전 준공(1977. 7. 30, 착공 : 1976. 4. 22)
    여주 영릉 보수정비 사업 준공(1977. 10. 9)
    부석사 정화사업 기공(1977. 10, 준공 : 1979년)
    강화전적지 정화사업 준공(1977. 10. 28, 착공 : 1976. 8)
    고창 읍성 복원정비(1977. 12. 30, 착공 : 1975년)
    내장사 정화사업 준공(1977년, 착공 : 1974년)
    안동 하회마을 영모각 보수 준공(1977년, 유성룡장군 유물보관)
    홍지문 준공(1977년)
    월정사 복원 공사 착공(1978. 5. 3)
    제주 황파두리 항몽유적지 정비 준공(1978. 6. 2)
    금오산 채미정 정화사업 착공(1978. 6. 2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1978. 6. 30)
    해남 표충사 보수사업 착공(1978. 8. 15)
    김천 직지사 정화사업 준공(1978. 10. 30, 착공 : 1977년)
    곽재우장군 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착공(1978. 11. 22)
    충주 충렬사 정화사업 준공(1978. 11. 23)
    국립광주박물관 개관(1978. 11. 28, 착공 : 1977년)
    광산 고경명장군 포충사 보수사업 준공(1978년)
    부산 충렬사 보수 준공(1978년, 착공 : 1976년)
    예산 윤봉길의사 충의사 보수 정화사업 준공(1978년)
    경주 보문관광단지 개장(1979. 4. 6)
    한국 미술 5천년전 개막(1979. 5. 1,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턴, 클리블랜드, 뉴욕, 캔자스시티, 위싱턴, 시애틀)
    남원 만인의총 정화사업 준공(1979. 10. 5)
    광주 충장사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기공 : 1974. 4. 4)
    충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준공(1979년)
    춘천 유인석 의병장 유적 정비보수 준공(1979년)








    농어촌개발공사 창립(1967. 12. 1)
    농업기계화 8개년 계획 확정(1969. 2. 22)
    농어촌근대화촉진법 승인(1969. 11. 1)
    새마을가꾸기운동 제창(1970. 4. 22)
    권농일 기념행사 참석하여 “자조정신” 강조(1970. 6. 10)
    전국 읍면장에게 새마을가꾸기 교육 실시(1970. 10. 5~8)
    수원 벼베기 행사에 참석하여 “농민의 자조정신과 자발적 노력은 농촌부흥과 근대화의 근본요소”라고 언명, 전남 광주에서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 촉진대회(1970. 11. 11)
    금강, 평택지구 다목적 농업개발사업 기공(1971. 3. 23)
    내 집 앞 쓸기운동 제창, 청와대 직원들과 거리 청소(1971. 3. 24)
    제3회 어민의 날 치사에서 자조, 자립정신 강조(1971. 4. 1)
    충북 음성 지원유세에서 “나의 소망은 농촌의 가난을 없애는 일” 이라고 말함(1971. 5. 18)
    월간경제동향보고에서 경남 거창군 관내 일원 우수새마을 보고(1971. 6. 7)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근면과 검소, 농어민의 소득증대와 증산에 도정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고 강조(1971. 7. 30)
    내무부에 새마을 전담 부서(지역개발담당관, 도시개발관, 농촌개발관, 주택개량관) 신설(1971. 8. 19)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성실한 지도자, 협동정신, 농민도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1971. 9. 7)
    경북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의 새마을가꾸기 모범부락과 포항제철 시찰(1971. 9. 17)
    새마을정신을 「근면, 자조, 협동」으로 규정(1971. 9. 29)
    1972년 새마을가꾸기 대상 16,600개 마을 선정 완료(1971. 10. 30)
    농협중앙회에 독농가연수원 설치(1972. 1. 14, 새마을지도자교육 실시)
    새마을지도자교육 기본방침 대통령 재가(1972. 1. 21, 교육장소 : 1972년도는 경기도 고양군 소재 농협대학에서 1973년 이후는 수원시 소재 농민회관, 교육기간 : 2주간, 교과편성 : 새마 을정신 30% 전문과목(성공사례, 실기) 70%)
    전북도 순시에서 “자조정신이 없는 농민은 도울 수 없으며 농어촌의 투자는 해마다 늘려 갈 것이다”라고 강조(1972. 2. 3)
    경북도 순시에서 “농촌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농민들의 자조정신 함양과 협동봉사하는 정열을 불태워야 한다”라고 강조(1972. 2. 7)
    독농가연수원 순시(1972. 2. 24)
    전국 부락세 조사(1972. 3. 1~5. 15)
    대통령령 제6104#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규정 제정(1972. 3. 7)
    지방장관회의 유시에서 “금년도의 최 중점사업은 새마을운동이며 새마을정신을 범국민화하라”고 지시(1972. 3. 7)
    서울시 방배동의 새마을 현장 시찰하고 전국의 임야에 유실수를 심어 식량화 방안 강구하라고 관계관에 지시(1972. 3. 24)
    서울 동대문구 중화동민들이 새마을운동으로 도로확장사업을 하고 있는 현장 방문 격려(1972. 3. 30)
    경기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 새마을 시찰(1972. 4. 3)
    진해시 풍호동 새마을사업장 시찰(1972. 4. 7)
    경상남도의 새마을사업 현장 두루 시찰(1972. 4. 8)
    청와대 국무회의 주재하고 새마을운동의 추진방법 논의(1972. 4. 11)
    정부여당연석회의에서 “지금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마을운동의 기풍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이 운동은 어느 정권적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민족번영의 추진운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1972. 4. 14)
    경인화력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하여 치사를 통해 “농어촌 구석구석 까지 송?배전시설을 갖추어 전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힘(1972. 4. 17)
    새마을노래 작사 작곡(1972. 4. 21)
    새마을운동 촉진대회에서 “자신과 의욕이 없는 민족은 비록 아무리 좋은 여건과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것을 보충할 줄 모르고 이용 하지 못한다”라고 강조(1972. 5. 8)
    광주 새마을소득증대 촉진대회 치사에서 “새마을운동은 한국근대화의 행동철학이므로 문화인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한다”라고 강조(1972. 5. 18)
    국도변 소도읍가꾸기운동 전개(1972. 5. 20)
    제7대 대통령 취임 1주년, 지난 1년간 230회 출장으로 전국의 새마을현장을 시찰(1972. 7. 1)
    전국시장회의 시 도시공한지 전개, 국도변 도읍가꾸기, 도시새마을운동 지침 시달(1972. 7. 22)
    상공부에 농가공산품 개발위원회 설치(1972. 7. 31)
    8.3 재정조치를 계기로 기업인도 새마을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1972. 8. 12)
    서울지구 수해복구작업을 시찰하고 수해복구에 새마을정신을 발휘 하도록 하라고 당부(1972. 8. 21)
    충남 연기 벼베기대회 치사에서 “스스로 돕는 자는 정부도 돕고 남도 돕고 이웃도 돕고 하늘도 돕는다”라고 강조(1972. 9. 29)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농한기에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라”고 지시(1972. 10. 13)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하여 “새마을운동을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업으로 추진” 천명(1972. 10. 17)
    충남 연기 벼베기대회에서 “수해를 이겨 낸 불굴의 정신으로 새마을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1972. 10. 29)
    국무회의에서 “전 국토를 연중 작업장화 하라”고 지시(1972. 11. 3)
    모범 새마을에 농어촌의 소규모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1972. 11. 15)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운동으로 국력을 배양해 가자고 당부(1972. 12. 8)
    농어촌지붕개량촉진법 개정(1972. 12. 26, 지붕개량업무를 농수산부에서 내무부로 이관)
    연두기자회견 시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추진” 강조(1973. 1. 12)
    새마을 총람 발간(1973. 1. 15)
    내무부 새마을 직제 개정(1973. 1. 16, 지역개발담당관을 새마을담당관으로 개칭, 새마을계획분석관 신설, 도시농촌주택개량관을 폐지하고 지방국에 새마을지도과·도시지도과·주택지도과 신설)
    상훈법에 새마을훈장을 추가(1973. 1. 25)
    시도, 시군구에 새마을 부서 신설(1973. 2. 1)
    전라북도 순시에서 “새마을사업은 겉치레보다 소득증대에 힘써야 한다”라고 강조(1973. 2. 7)
    독농가연수원, 수원농민회관으로 이전(1973. 4. 8)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새마을 유공자에게 훈장 수여(1973. 5. 7)
    경기 화성군의 대우실업 새마을공장 시찰(1973. 5. 22)
    독농가연수원을 새마을지도자연수원으로 명칭 변경(1973. 5. 31)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3. 9. 13)
    공장새마을운동에 관한 종합추진방안 협의(1973. 9. 21)
    전남 광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3. 11. 22)
    공장새마을운동중앙추진위원회 운영요강 작성(1973. 11. 30)
    새마을지도자 육성지침 시달(1974. 1. 10)
    충청북도 순시에서 “모든 사업은 사전에 경제성과 기술성의 문제를 치밀하게 검토하되 그 정신적 기조는 새마을운동에 두라”고 지시(1974. 2. 8)
    공장새마을운동중앙추진회 및 실무위원회 구성(1974. 2. 20)
    공장새마을운동 시범업체 1차 200개 공장 지정(1974. 3. 2)
    상공부 새마을연수원 개원, 전국 새마을증산대회 수상자 39명을 접견하고 소득증대에 이바지해 달라고 당부(1974. 3. 18)
    대구, 울산, 목포 도시새마을 평가보고회 최초 개최(1974. 4. 30)
    도시녹화운동 전개(1974. 5. 2)
    새마을운동론을 공무원 시험과목으로 설정(1974. 5. 4)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사업은 도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1974. 5. 7)
    아산 남양방조제 준공(1974. 5. 22, 착공 : 1971. 3)
    국무회의에서 새마을사업은 환경을 꾸미기보다 생산에 역점을 두라고 지시(1974. 6. 7)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4. 7. 10, 장?차관도 새마을교육 받도록 지시)
    장·차관 새마을교육(1974. 7. 22)
    철도변가꾸기운동 전개(1974. 9. 8)
    전국직장새마을지도자협의회 신설(1974. 11. 14)
    청와대에서 새마을유공자 67명에게 직접 서훈(1974. 12. 17)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4. 12. 18)
    전국 138개 군에 새마을담당 부군수제 신설(1975. 1. 1)
    내무부 새마을직제 개정(1975. 1. 1, 새마을계획분석관을 새마을기획과로 개칭하고 주택지도과를 폐지 새마을교육과를 신설)
    제주도 축산개발연구소, 감귤냉동공장, 남제주군 남북면 신례리 새마을사업현장 시찰(1975. 1. 5)
    농촌지역 상수도시설 5개년 계획 마련(1975. 1. 21, 절대농지 논의 80%까지 확대키로 결정)
    대단위농업개발사업계획 발표(1975. 2. 1, 경주, 삽교천, 계화도 등)
    시도단위 민간단체 새마을운동협의회 구성(1975. 3. 21~6. 30)
    나의 조국 작사 작곡(1975. 5. 10)
    새마을모자 제정(1975. 5. 14)
    상공부 공장새마을운동 제2연수원 개원(1975. 7. 7, 수출산업공단)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 참석, 새마을운동의 확대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 새마을지도자에게 훈장 수여(1975. 7. 12)
    국토가꾸기 기동순찰반 발대식(1975. 8. 24)
    새마을 일제 총열 실시(1975. 11. 5~11. 20)
    제1회 새마을운동 연구발표회(1975. 11. 27~28)
    경북 대구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5. 12. 10)
    직장단체 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1975. 12. 26)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근로자 처우개선으로 생산성 향상, 물자절약, 수출상품의 품질향상, 공장새마을운동을 활발히 전개(1976. 1. 28)
    도시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3대 질서확립운동 전개(1976. 2. 16)
    새마을운동 특별기념우표 발행(1976. 4. 15, 총 5종 1,000만개)
    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6. 5. 11)
    우수마을 특별지원사업 충열 실시(1976. 5. 22~6. 5)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저소득층 의료혜택, 수출업체 경쟁력 강화, 농어촌의 구조개선방안 등을 반영하라고 지시(1976. 6. 15)
    새마을금고 육성지침 시달(1976. 6. 18)
    공장새마을운동 추진요강 제정(1976. 7. 2)
    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순시(1976. 7. 6, 성공사례청취)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 참석, 주곡의 자급자족, 농수축산물의 증산운동 지시, 새마을지도자들과 밤의 가공처리, 한발대책, 농협의 유통구조개선 등에 대한 의견 교환(1976. 7. 12)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공단근로자들 야간중학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 각 기업체의 후생시설 확충, 야간학급 및 산업체 부설학급에는 정부지원 등을 지시(1976. 7. 23)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 국민의 의식개혁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1976. 8. 25)
    영산강유역농업개발 제1단계사업 준공식에 참여하여 “영농근대화로 식량증산의 가속화를 이루어야 한다‘라고 강조(1976. 10. 14)
    시도별 공장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 개최(1976. 11. 3~5)
    민간단체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창립총회(1976. 11. 10)
    충남 대전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6. 12. 10)
    제주도 새마을부락 시찰(1977. 1. 1)
    농수산부와 건설부 순시에서 농촌주택을 문화주택으로 전환, 어선의 대형화 및 동력화 추진을 지시(1977. 1. 21)
    상공부 순시에서 모든 기업의 공장새마을운동 참여와 에너지 10% 절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라고 지시(1977. 1. 22)
    민간단체 새마을운동전진대회(1977. 2. 25)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노총간부들을 접견하고 공장새마을운동은 노동조합에서 적극 앞장 서 달라고 당부(1977. 3. 10)
    우수새마을지도자 일본 시찰(1977. 3. 14~21)
    제1회 공장새마을전진대회 개최(1977. 3. 20)
    공장새마을추진본부 설치(1977. 3. 21)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의 근로자 야간학교 수업상황 시찰(1977. 4. 19)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공장새마을운동을 중소기업에 확대시키는 한편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강조(1977. 5. 10)
    새마을기술봉사단 활동사례발표회(1977. 8. 26)
    정부종합청사 5층에 새마을상황실 개실(1977. 9. 1)
    도시새마을운동 비교평가회 개최 및 농촌불량주택 조사(1977. 9. 20)
    제4차 중소기업 국제회의 서울대회 치사에서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인 상부상조의 정신을 되살려 오늘의 기업윤리 및 근로윤리로 정립시켜 가려는 것이 공장새마을운동이다”라고 강조(1977. 10. 11)
    전국직장단체 대항 새마을합창경연대회 개최(1977. 10. 12)
    전북 전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7. 12. 9)
    대구시에서 중소기업 공장새마을운동 촉진대회 개최(1977. 12. 13)
    농촌주택 55만동 개량촉진대회 개최(1978. 1. 6)
    영산강유역농업개발 2단계사업 착공(1978. 1. 20, 준공 : 1983년)
    범국민 3대질서운동촉진대회 개최(1978. 1. 23)
    상공부 순시에서 공장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제경쟁력을 키우라고 지시(1978. 1. 26)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실에 농촌주택개량과 신설(1978. 3. 1)
    농촌주택개량사업촉진대회 개최(1978. 3. 17)
    공장새마을 주안연수원 개원(1978. 4. 25, 여성지도자 교육)
    경기도 새마을운동 농촌주택 개량사업현장 시찰(1978. 5. 2)
    1978 주택개량마을 입주식 거행(1978. 7. 4)
    조선일보 기자와의 좌담회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민정신과 문화계발을 촉진해 간다는 신념을 밝힘(1978. 7. 6)
    논산지구 농업개발사업 완료(1978. 7. 21)
    3대질서운동 비교평가회 개최(1978. 9. 26)
    대구시에서 전국중소기업 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8. 10. 13)
    제1회 전국공장새마을운동 분임활동 경진대회 개최(1978. 11. 3)
    공장새마을 부산연수원 개원(1978. 11. 6)
    제1회 공장새마을운동 추진 종합평가대회(1978. 11. 20)
    전남 광주시에서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8. 12. 6)
    새마을운동 연구논문집에 「새마을운동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도장」 이라는 책자 휘호 씀(1978. 12. 8)
    범국민 3대질서운동 총열 실시(1978. 12. 17~23)
    농촌주택개량 총열(1979. 1. 10~14)
    도시새마을운동 10 중요구심사업 설정(1979. 2. 21)
    상공의 날 및 공장새마을전진대회 개최(1989. 3. 20)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서 서민생활의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새마을지도자 표창(1979. 4. 13)
    자영마을 신설 운용(1979. 4. 18)
    직장여성 소비절약결의대회 개최(1979. 7. 4)
    공장새마을운동 총열(1979. 7. 1~25)
    전국 137개군에 새마을과 설치(1979. 7. 16)
    공장새마을운동 촉진결의대회 개최(1979. 8. 31)
    새마을금고 중앙교육원 신축기공(1979. 9. 20)
    삽교천 방조제 준공(1979. 10. 26, 착공 : 1977년)
    전국직장새마을운동 비교평가대회 개최(1979. 11. 7)
    미호천 1단계 사업 준공(1979. 11. 12)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개최(1979. 12. 28, 시도별 개최)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설치법 공포(1979. 12. 28, 법률 제3171호)







    산림법 제정(1961. 12. 27)
    국토녹화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포(1963. 2. 8)
    치산 녹화 7개년 계획(1965~1971) 성안(1965. 4. 1)
    산림청 개청(1967. 1. 9)
    수계별 산림복구종합계획(1967~1976) 확정
    치산녹화사업 10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3. 3. 10)
    영일지구 사방사업(1973~1977)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일대를 자연학습도장으로 개발 결정(1977. 1. 18)
    자연보호에 대한 전 국민운동의 전개를 위해 민간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라고 관계부서에 지시(1977. 10. 5)
    육림의 날 선포(1977. 10. 7)
    자연보호협의회 창립총회(1977. 10. 28)
    자연보호 범국민궐기대회에 참석하여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1977. 11. 5)
    서울 미아1동 자연보호회와 어머니회 회원들과 우이동 등산로에서 자연보호운동 전개(1978. 9. 23)
    자연보호헌장 선포(1978. 10. 5)
    청와대에서 자연보호 회의 주재(1978. 10. 13)
    북한산 계곡에서 비서실 직원들과 자연보호운동 실시(1979. 10. 8)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1979년)







    국토통일원 개원(1969. 3. 1)
    8. 15 평화통일정책구상 선언(1970. 8. 15)
    한국적십자 남북가족찾기회담 제안(1971. 8. 12)
    남북 첫 전화 개통(1971. 9. 22)
    남북적십자회담 첫 실무회의 개최(1972. 2. 21)
    남북공동성명발표(1972. 7. 4)
    남북적십자 첫 본 회담(1972. 7. 30, 평양)
    남북적십자회담용 직통 전화 20회선 개통(1972. 8. 17)
    남북적십자 2차 본 회담(1972. 9. 13, 서울)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1차 회의(1972. 10. 12, 판문점)
    남북적십자 3차 본 회담(1972. 10. 24,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2차 회의(1972. 11. 2, 평양)
    남북적십자 4차 본 회담(1972. 11. 22, 대한적십자 회담사무국 회의실)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3차 회의(1972. 11. 30, 서울)
    남북조절위원장 회의(1972. 12. 12)
    서울-평양 직통전화 개통(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제2차 회의 개최(1973. 3. 14, 평양)
    남북적십자 5차 본 회담(1973. 3. 21, 평양)
    남북적십자 6차 본 회담(1973. 5. 8, 서울)
    남북조절위원회 제3차 회의 개최(1973. 6. 12, 서울)
    평화통일 외교정책 7개항 발표(1973. 6. 23)
    남북적십자 7차 본 회담(1973. 7. 11, 평양)
    연두회견에서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제의(1974. 1. 18)
    남북한 이산가족재결합 촉구(1974. 6. 15)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 발표(1974. 8. 15)
    남북문화교류 및 공동학술연구 제의(1976. 4. 12)
    북한에 식량 원조 제의 및 남북불가침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명(1977. 1. 12)
    남북한 민간경제협력기구 구성 제의(1978. 6. 23)
    남북한 당국 무조건 대화 제의(1979. 1. 19)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1961. 5. 19)
    국가재건 비상조치법 공포(1961. 6. 6)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취임(1961. 7. 3, 내각 수반 : 송요찬)
    반공법 공포(1961. 7. 3)
    박정희 의장 정권이양시기, 정부형태, 국회구성 등 중대성명 발표(1961. 8. 12)
    박정희 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1962. 3. 24)
    박정희 의장 내각 수반 겸임(1962. 6. 16)
    국민투표법 공포(1962. 10. 12)
    헌법개정안 국민투표 실시(12. 17)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1963. 1. 21)
    민주공화당 창당(1963. 2. 26)
    박정희 의장 4년간 군정 연장안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발표(1963. 3. 16)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의장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1963. 5. 27, 지명수락 : 1963. 8. 31)
    제5대 대통령 투표(1963. 10. 15, 총 4,692,644표를 얻어 당선)
    최고회의 해체(1963. 12. 16)
    제5대 대통령 취임 및 국회 개원(1963. 12. 17)
    언론윤리위원회법 통과(1964. 8. 2, 공포 : 5일)
    대일청구권자금 제1차년도 사용안 9천5백93만3천달러 국회 통과(1966. 3. 6)
    제6대 대통령 선거 실시(1967. 5. 3, 취임식 : 1967. 7. 1)
    지방행정제도 개편(1967. 7. 13)
    3선 개헌안 및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임 국민투표 실시(1969. 10. 17, 찬성 : 755만 3,655명)
    제7대 대통령 선거 실시(1971. 4. 27, 총 6,342,828표 얻어 당선)
    제7대 대통령 취임(1971. 7. 1)
    헌법개정안 공고(1972. 10. 27)
    유신헌법안 국민투표 실시(1972. 11. 21)
    제8대 대통령 취임 및 유신헌법 공포(1972. 12. 27)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1975. 2. 12, 73.11% 찬성)
    서정쇄신 추진(1975. 11. 20, 부조리척결)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 피력(1977. 2. 10)
    제9대 대통령 취임(1978. 12. 27)







    서울 국제방송국 개국(1961. 7. 1)
    서울 텔레비젼 방송국(KBS-TV) 개국(1961. 12. 31)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1962. 1. 1)
    장충체육관 개관(1963. 2. 1)
    민간방송 동아방송국 개국(1963. 4. 25)
    가족계획사업 추진(1963. 9. 17)
    동양방송(라디오 서울) 개국(1964. 5. 9)
    5·16 민족상 제정(1966. 3. 15)
    인구센서스 실시(1966. 10. 1)
    주민등록법 개정(1968. 5. 29, 시?도민증 없애고 주민등록증으로 갱신 : 1968. 11. 21, 주민등록증 휴대 의무화 : 1969. 4. 22, 18세 이상 휴대 의무화 : 1970. 2. 2)
    가정의례준칙 선포(1969. 3. 3, 새 가정의례준칙 시행 : 1973. 6. 1)
    남산 어린이회관 기공(1969. 5. 5, 준공 : 1970. 7. 25)
    MBC 텔레비젼 방송 개국(1969. 8. 8)
    사회정화운동 전개(1970. 1. 15, 호화주택, 분묘 등 규제)
    우편번호제 실시(1970. 7. 1)
    태릉 국제사격장 준공(1971. 9. 25)
    여의도 5·16광장 준공(1971. 9. 29)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 개막(1972. 6. 16)
    어린이대공원 개원(1973. 5. 5)
    새로 제정한 첫 어버이 날(1973. 5. 8)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1973. 10. 17, 착공 : 1967. 10. 25)
    국민복지연금법 제정(1973. 12. 24)
    한국근로복지공사 설립(1974. 8. 8)
    정립회관 개관(1975. 10. 30, 장애인보호육성)
    전국에서 첫 반상회 실시(1976. 5. 31)
    직장의료보험제도 실시(1977. 7. 1)
    잠실올림픽경기장 기공(1977. 11, 준공 : 1984. 9. 29)
    세종문화회관 준공(1978. 4. 14, 기공 : 1974년)
    남서울대공원 착공(1978. 10. 30, 준공 : 1984. 5)
    잠실체육관 건립(1979. 4. 18)
    한국종합전시장 개관(1979. 7)
    국제올림픽대회 서울 유치 언명(1979. 10. 12, 제60회 전국체전 치사에서)







    학사자격 국가고시 첫 실시(1961. 12. 22)
    문맹자 퇴치운동 전개(1961. 12~1962. 4)
    5·16 장학회 설립(1962. 7. 14, (재)정수장학회로 변경 : 1982. 1. 14)
    제1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 수립 추진(1962년, 제2차 : 1967~1971년)
    사립학교법 공포(1963. 6. 26)
    국사교육 통일방안 확정(1963. 8. 8)
    도 단위 교육자치제 실시(1964. 1. 4)
    4·19도서관 개관(1964. 9. 1)
    6-6-4 학제를 66학년도부터 실시 발표(1965. 9. 15)
    천체과학관 개관(1967. 4. 29)
    박 대통령 서울대 신축 10개년 계획 지시(1967. 11. 6)
    71년까지 중학입시시험 전폐 등 입시개혁 발표(1968. 7. 15)
    대학입시 예비고사제를 69년부터 실시한다고 발표(1968. 10. 14)
    국민교육헌장 선포(1968. 12. 5)
    국공립중학교증설 7개년 계획 확정(1969. 1. 6)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입학 첫 추첨 실시(1969. 2. 5)
    고등학교기관확충계획 발표(1969. 2. 10)
    금성사 등 7개 대기업체 이공계 실업학교 부설키로 결정(1969. 11. 11)
    전국 10개 도시 중학 무시험 진학 추첨 실시(1970. 2. 3)
    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 마련(3. 22, 86년까지 단계적 실시, 의무교육 9년으로 연장, 교육세 신설)
    국민윤리 교과 신설(1971. 2. 19)
    종합교육센터 기공(1971. 4. 14)
    학원질서 확립을 위한 특별명령 발표(1971. 10. 15)
    경찰대학 4년제로 승격(1972. 2. 11)
    교육용 한자 1,781자 선정 발표(1972. 6. 7, 중학 888자, 고교 893자)
    전국 91개 공업고등학교 신설 확충 계획 발표(1973. 7. 10)
    체육고 신설 결정(1973. 9. 5)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광주 고교평준화 작업 1단계 완료(1974. 11. 20)
    어린이 독서 헌장 선포식(1976. 5. 2)
    국비 유학제도 신설(1976. 5. 20)
    공단 근로자를 위해 야간중학 개설 지시(1976. 7. 23)
    정독도서관 개관(1977. 1. 4)
    산업체 근로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특별학급 설치 기준령 의결(1977. 2. 15)
    78년부터 서울을 제외한 전국 국교생에 교과서 무상 지급키로 확정(1977.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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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답한 2005-12-13 22:57:07
    다 좋은데 딴나라당하고 조중동은 믿지들 마시게
    걔들이 언제부터 인권 좋아하던가? 그 인간들은 인권알기를 발가락에 낀 때보다 못하게 알던 종자들일세... 그들이 지금 인권 얘기하니 그럴 듯 해 보이던가?
    북쪽의 뽀그리한테 그렇게 속아보고 남쪽에 와서도 딴날당 족속들한테 속을텐가? 정신들 좀 차리소... 저 인간들은 오로지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되있는 족속들이요... 저들 정권 잡으면 북한인권을 해결해 줄거라고 보시는가? 당신들 왕따당할걸세... 딴날 족속들은 지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뽀그리하고도 손잡을 넘들이야....
    예를들어 북파공작원(HID)들 언제 보내던 사람덜인가? 박통하고 두환이때일세... 그러고선 지들 인권을 말살했다고 언제부터 나서든가.. 김대중통일때일세..박통때는 찍소리도 못하던 것들이... 이제와서 명예회복 시켜주니 인제 현정권을 비판하고 있지? 한심한 것들이지..
    지금 집권세력 욕하는 거 좋은데 제발 딴날당 사익 추구집단, 부패의 원조, 고문, 차떼기, 어거지들 말은 믿지 마시게...
    한 10년 쯤 지나보면 아실걸세.. 여기에서 아직두 속고있는 지역주의에 물든 꼴통들하고 노친네들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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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린당 2005-12-14 04:57:48
    열우당과 개구리가 북한인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여러분은 잘 보셔서 아실겁니다. 원래가 그런 놈들입니다. 국보법을 없애서 친북세력들을 자유로이 날뛰게 하고 북한에 국민세금 상의도 없이 갖다 바치고 단 하나뿐인 우리의 우방 미국 욕하고 민족신문들 탄압하고... 탈북자 출신분들 중에는 남한내 빨갱이들 때문에 신분조차 숨겨야 하는 분들 꽤 많죠. 북에서 보내는 간첩의 수는 줄지 않았음에도 이 정권들어서는 일년에 한명 잡을까 말까 입니다. 일전에 국정원직원들도 간첩잡으면 칭찬받던 분위기에서 간첩 잡고 오히려 눈치보는 분위기로 전락했다더군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세대들과 그 역사를 부정하는 벌린당 및 벌린당 추종하는 빨갱이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어떻게 지켜온 자유대한인데, 얼마나 우리가 노력해 만들어온 이나라인데 저런 반역 빨갱이 도당들이 날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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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요한돈강 2005-12-14 14:56:42
    위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어 놓은것 자세히 보시고 북에서 오신 분들도 민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진정한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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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통과 정말로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