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北에 있었다면 지금쯤 어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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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방송 2008-09-28 [연변 특파원 최순호 기자가 10년 간 렌즈 속에 담아 온 在中 탈북자들의 恨, 사진전 통해 일반에 공개] ‘91년 조선일보 입사 후 97년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연수특파원’ 탈북자들과 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순호 조선일보 기자. 중국 파견 시절 탈북자들을 만나 지난 10년간 그들의 고통과 애환을 한 장 사진 속에 담아 온 그가 최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롯데아트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이번 사진전의 제목은 ‘탈북 恨’ 연변 시절 그의 뒤를 따르던 7~8명의 ‘꽃제비’ 아이들부터 두만강 가에서 농사를 짓던 탈북 청년까지. 그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던 그들 탈북자들의 한(恨)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총 17점의 사진들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탈북자들을 접하는 동안 ‘나도 그들이 될 수 있었다’‘내가 그들이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과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최 기자는 “내가 가진 것이 사진밖에 없어 사진으로나마 그들의 인권 상황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10년간 가슴에 담아 두었던 심정을 토로했다. ‘그들의 이야기(시공사)’라는 사진집으로도 출간된 중국 내 탈북자들의 모습과 실상을 공허하게, 하지만 예리하게 고발하고 있는 사진전 ‘탈북 恨’은 오늘인 26일부터 내달 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오주한 기자 ohjuhan@hotmail.com -최순호 기자 인터뷰 전문- Q.이번 사진전의 취지는? A.내가 두만강을 건너 그들을 처음 만나 것이 97년이었다. 당시 연변대학교에서 1년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 북한은 소위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었다. 연변에 있을 당시 내 뒤로는 항상 7~8명의 아이들이 따라다녔다. ‘삼촌삼촌’ 하면서. 그리고 도와달라고, 먹을 것 달라고. Q.탈북자들을 렌즈에 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A.두만강 가 농촌에서 일하는 탈북청년을 만났다. 청진의대 출신이라고 했다. 북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으로도 갈 수도 없어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밤새 울더라. 그리고는 ‘나를 배고파서 강을 건너게 한 북한의 지도자가 정말 죽이고 싶도록 밉다’고 하더라. 둘이 차를 타고 연길시내로 들어오는데 그 때 처음으로 ‘같은 한민족으로서 내가 북에서 태어났으면 어떤 처지였을까’하고 생각했다. 배가 고파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강을 건넜다면 어디쯤 와 있을까. 같은 민족, 같은 형제. 나도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청년을 도와주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얄미웠다. 그 때부터 (그들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그들이 처한 인권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사진밖에 없었으니까. Q.공개된 사진들은 총 몇 점인가? A.총 17점이다. Q.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의 반응은? A.정식 오픈은 오후 5시다(주-그와 인터뷰를 가진 시간은 오후 3시였다). 탈북이라는 문제는 (당연히) 알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힘이 닿는 한 계속 할 것이다. 현재 언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도 상당수 들어오고 있다. Q,탈북자 관련 사진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인지? A.이렇게 처음 전시회를 열게 되었는데 탈북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할 것이다. Q.어떤 의미에서는 인권 운동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A.내가 가진 무기가 사진이기에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같은 민족인 우리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내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 사진집을 영문으로도 출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길 바란다. Q.이번 사진전으로 발생되는 수익성은? A.(단호히) 없다. 만약 이 작품을 사겠다고 하고 누군가에게 팔게 된다면 그 분(구매자)이 탈북자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만약 수익이 생긴다면 나 자신보다 탈북자 인권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한다. |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탈북자잡는 경찰놈 때려죽이고 변방대 군인 때려죽이고 하는거야..머 자책을 가지는것보단 성스러운 위업인데 웬 소릴? 중국인 남편들은 맨날 술만 처마시고 일하기 싫어하고 중국말도 변변치 않고 조선말도 변변찮고 하니까 잘라버리지.. 자기한테서 잘못을 안 찼구 왜 남보구 야단이냐? 이 조선족 촌 새끼야~ 북한여자에게서 버림을 받았으면 똥때늠 기집애들 많찮아? 쿠린내 나는 때늠 기집애 하나 데려다 살어~ 별 꼴이야 진짜
쿠린내 안나는데??
적어도 된장녀보담 낫지므 ㅎㅎ